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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가 고른 5권, “인생의 답은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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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 요약

  •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가 선택한 인생 책 5권
  • “죽을 때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은 몇 백 권뿐”…책 선택도 기회비용
  • 다양한 시민들이 말하는 ‘종이책만이 줄 수 있는 것’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수백만 년 동안 계산을 거듭한 거대 AI 컴퓨터가 내놓은 답은 단 두 글자, ’42’였다. 더글라스 애덤스 소설 속 이야기지만, 뇌과학자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이것이 허황된 농담이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는 답이 아니라 질문 자체라는 것이다.

EBS 교양 프로그램 〈책과 삶 – 사람산책〉에 출연한 김 교수는 광화문 교보문고를 배경으로 자신의 인생 책 5권을 소개했다. 단순한 도서 추천이 아니었다. 각 책에는 뇌과학과 철학, 역사와 인간 본성에 관한 깊은 통찰이 녹아 있었다.


“답보다 질문이 먼저다”

더글라스 애덤스 소설에서 외계 문명은 삶의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딥 소트(Deep Thought)’라는 슈퍼컴퓨터를 만든다. 수백만 년 연산 끝에 나온 답은 ’42’. 그러나 이 숫자에 맞는 정확한 질문을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그 질문을 찾기 위해 다시 설계된 거대한 계산 시스템이 바로 지구였다. 지구인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곧 그 계산의 과정이었다.

김 교수는 이 대목에서 ‘안내서’라는 단어를 짚었다. 맛집을 갈 때도,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도 우리는 리뷰를 찾고 안내서를 펼친다. 그런데 정작 가장 처음 겪고 가장 험난한 여행인 ‘인생’에는 아무런 안내서 없이 내던져진다. 이 역설이 책의 핵심이다.


100조 개의 신경세포가 만든 ‘잡생각’ 문학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20세기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그러나 읽기 극악으로 어렵기로도 유명하다. 더블린의 평범한 남성이 단 하루 동안 경험하는 일을 1000페이지에 담았다.

이 책이 위대한 이유는 인류 문학사상 최초로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잡생각’을 글로 옮겼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뇌과학으로 이를 설명한다. 인간 뇌에는 약 100조 개의 신경세포 연결고리가 있어 수백만 개 자아가 동시에 작동한다. 하지만 평소에는 가장 지배적인 자아 하나만 표출되고 나머지는 억압된다. 《율리시스》는 그 억압을 해제한 소설이다.

특히 마지막 20장, 주인공 아내 ‘몰리’의 내면 독백은 마침표도 쉼표도 없이 수십 페이지가 이어진다. 인간 생각이 원래 그렇게 흐른다는 것을 형식 자체로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김 교수는 언어의 한계를 짚는다. “언어 해상도는 생각 해상도보다 최소 만 분의 1에서 십만 분의 1 수준으로 낮다.” ‘빨간 사과’라는 단어 하나로는 실제 사과의 무수한 색감과 질감을 결코 담을 수 없다.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서로 다른 것을 상상하기 때문에 오해와 배신감이 생긴다. 인간 사이의 소통이 근본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예술은 왜 존재하는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이 소설은 13~14세기 몽골 군대의 바그다드 침략이라는 잔혹한 배경 위에 선다. 탑 위에 숨어 가족과 이웃이 살육당하는 장면을 강제로 목격해야 했던 한 화가가 결국 바늘로 자신 눈을 찌른다. 그리고 그는 생각한다. “세상이 이토록 추하고 잔인한데, 화가들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죽은 자들에 대한 모욕이자 오만이다.” 그는 화가들을 암살하기 시작한다.

김 교수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의 존재 의미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한국 독자에게 다소 낯선 중동과 이슬람 문화권의 역사를 깊이 이해하는 입문서로도 이 소설을 추천했다.


표범은 왜 먹이도 없는 산 정상에서 죽었을까

헤밍웨이의 단편은 질문 하나로 시작한다.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정상 근처에서 굶어 죽어 얼어붙은 표범 한 마리가 발견된다. 이 표범은 왜 먹을 것도 없는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죽었을까.

김 교수는 이 책이야말로 나이가 들수록 답이 달라지는 소설이라고 말한다. 10대에 읽을 때, 30대에 읽을 때, 50대에 읽을 때, 표범이 산을 오른 이유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고난을 감수하고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다 죽어가는 것, 그것이 인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비유다.


가족마저 버린 그

카프카의 《변신》에서 가족을 위해 평생 헌신한 청년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거대한 벌레로 변해 있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그를 돌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장 사랑했던 여동생마저 그를 “갖다 버려야 할 존재”로 취급한다.

이 소설에는 음울한 예언이 숨어 있다. 유대인이었던 카프카가 이 소설을 쓰고 10년 뒤,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유대인들을 살충제로 학살했다. 인간을 ‘벌레’로 규정하는 순간 어떤 잔혹함도 정당화된다는 것을 카프카는 예민하게 감지했던 것이다.

김 교수는 여기서 현대인 이야기로 연결한다. 나이가 들고 외모가 변하며 사회적 기준에서 멀어질 때, 타인과 가족 시선이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만큼,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도 자아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변신》은 그래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남은 인생 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은 몇 백 권뿐”

5권의 책 소개보다 더 강렬하게 남은 것은 김 교수의 한 마디였다. 어느 날 죽을 때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의 권수를 현실적으로 계산해보니 고작 몇 백 권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 느낌이 오지 않으면 과감하게 덮는다. 가치 없는 책을 읽는 기회비용이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남은 생애 동안 진지하게 식사를 함께할 수 있는 사람 수도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타인의 눈치보다 자신의 행복에 가장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서점을 찾은 사람들, 저마다의 책 이야기

현장 인터뷰에서 만난 시민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손주 첫돌 선물로 그림책을 고르던 전직 교사 할머니는 A.J. 크로닌의 《성채》를 인생 책으로 꼽았다. “10대에 읽었을 때, 50대에 읽었을 때, 70대에 읽을 때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13년 경력 물리치료사로 일하다 제2의 직업을 준비 중인 남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과 《시학》을 추천하며 “AI 시대에도 인간에 대한 이해, 즉 인문학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책은 당장 읽지 않더라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시집 전문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여성은 진은영 시인의 《우리는 매일매일》을 꺼냈다. “시집은 한 번 사두면 1년 뒤, 2년 뒤에 읽을 때마다 감상이 달라진다. 평생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책값이 전혀 아깝지 않다.”

출판사 퇴직 후 화훼기능사를 준비 중인 여성은 “스마트폰 정보는 휘발성이 강하지만 종이책은 뇌에 깊이 각인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온 영어 강사는 “인간 삶은 짧아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없기에 책을 통해 타인의 지혜를 빌리는 것은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한 김재원 아나운서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시인은 한 명이지만 독자는 수만 명이고, 그 수만 명이 읽음으로써 수만 개 해석이 나온다. 독자 해석이 곧 작품의 완성이다.”

결국 책은 저자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사람이 완성한다. 그리고 어떤 책을 어떤 나이에 읽느냐에 따라 같은 책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당신의 인생 책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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