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심 요약
- 지수는 사상 최고치, 체감은 딴 세상 — 반도체 빼면 코스피는 4,100선에 불과
- 500조 퇴직연금이 아직 본격 진입 전 — 이 자금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시장 판도가 바뀐다
- 다음 기회는 이미 소외된 곳에 있다 — 금융주(증권·손해보험)가 다음 순환매의 핵심 후보
코스피가 9000포인트를 넘어섰다. 숫자만 보면 대세 상승장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변에는 돈을 번 사람보다 “나만 소외됐다”고 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 괴리는 착각이 아니다. 지금 코스피는 두 개의 시장이 하나의 번호표를 달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가 삼킨 지수
코스피가 8800을 넘어 ‘9000피’를 바라보는 급등세를 보이는 가운데, 유진투자증권은 “반도체를 제외한 코스피는 4100∼4200에 불과하다”며 “2025년 이후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업체들의 주가 부진은 올해 더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쏠림 자체가 주가 정점이거나 악재는 아니나 건강하지는 않다”면서 “더 큰 문제는 이런 쏠림이 해소될 조짐이 별로 없다는 점”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 구조는 단순한 수치 문제가 아니다. 30년 가까이 업계에 있던 곽상준 매트릭스투자자문 대표는 최근 아내가 처음으로 주식을 샀다는 일화를 꺼내며 “수급과 심리 측면에서 완전한 과열”이라 진단했다. 다만 그는 1999년 닷컴버블과의 결정적 차이를 짚었다. 당시엔 실적 없이 주가만 올랐지만, 지금의 AI 반도체 밸류체인 기업들은 실제 이익 성장을 증명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2025년 6월 초부터 2026년 5월 현재까지 각각 436%와 1000% 상승을 기록하며 지수를 이끌었고, 2026년 전체 상장사 순이익 증가분의 70.8%를 이 두 기업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수를 이끄는 주체가 너무 명확하다. 그게 이 장세의 강점이자, 동시에 가장 큰 취약점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박세익 체슬리투자자문 대표는 이번 상승이 단순 반도체 랠리에 그치지 않는다고 본다. 상법 개정 논의 등 주주 보호 제도가 정비되면서 시장 자체가 ‘재건축’되는 효과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성장성을 믿고 투자했다가 배신당하던 ‘후진국형 시장’에서 벗어나, 주주 환원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선진국형 시장으로 진입하는 초입이라는 분석이다.
상법 개정안 통과와 확장적 재정 정책, 글로벌 AI 혁명에 따른 반도체 상승, 글로벌 공급망 재편 수혜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리며 코스피가 오랜 저평가를 뒤로 하고 5000포인트를 넘어선 배경으로 분석된다.
아직 움직이지 않은 500조
시장의 진짜 복병은 아직 출발선에 서 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시행 이후 증권 업계의 퇴직연금 적립금 비중은 24.3%에서 26.5%로 상승했다. 또,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은 496조5392억 원을 기록해 500조 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 자금은 아직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박세익, 곽상준 두 전문가 모두 이 점을 공통적으로 꼽았다. 퇴직연금이 본격적으로 증시로 유입되기 시작하면, 조정 시마다 막대한 매수 수요가 받쳐주는 구조가 된다. 지금까지의 대기 매수세가 기관·개인 중심이었다면, 다음 단계는 퇴직연금이라는 훨씬 더 두꺼운 자금층이다.
버블인가, 레벨업인가
과열 논쟁의 결론은 어느 한쪽으로 쉽게 수렴하지 않는다. 그러나 리스크 요인은 명확하다. 금리다.
곽상준 대표는 밸류에이션의 역설을 지적했다. 반도체 기업들의 미래 이익 전망치를 역산하면, 빅테크(하이퍼스케일러)들이 감당해야 할 AI 인프라 지출 규모가 비현실적으로 커야 숫자가 맞는다. 그는 “미국의 1년 예산이 8조 달러가 채 안 되는데, AI 인프라에만 수조 달러를 쏟아붓는다는 계산은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경고했다.
박세익 대표는 금리를 워터파크의 ‘해골 바가지에 물이 차오르는 것’에 빗댔다. 2000년 닷컴버블, 2008년 금융위기 모두 금리가 임계점에 달했을 때 거품이 터졌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고점에서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면, 언제든 조정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대형 강세장에서 상·하반기 한 번씩 15% 안팎의 중간 조정이 찾아왔다. 스페이스X 상장, 일본 BOJ 금리 인상 가능성 등이 맞물리는 시기에는 현금 비중을 일부 확보하고 쉬어가는 것도 전략이다.
다음 순환매의 후보: 금융주
대형 반도체 랠리가 소강 국면에 접어들면 어디로 돈이 이동하는가. 두 전문가가 공통으로 꼽은 섹터는 금융주다.
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거래대금이 늘자 증권사 중개 수수료 수익 증가 기대가 커졌고, IPO·회사채 발행·인수합병 자문 등 IB 부문 실적 개선 전망이 더해지며 증권 업종 전반의 이익 추정치가 상향 조정됐다.
그럼에도 주가는 반도체를 팔기 위한 매도세에 짓눌려 과도하게 하락한 상태라는 분석이다. 거래대금 폭증으로 역대급 실적이 예상되는데 주가는 제자리인 증권사, 그리고 손해보험사가 대표적이다. 이익 대비 가격 매력이 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구간에 있다는 뜻이다.
“느긋한 사람의 시대”
곽상준 대표는 워런 버핏의 말을 인용했다. “투자 세계는 조급한 사람의 돈이 느긋한 사람에게로 이전되는 과정이다.” 이미 수익이 많이 난 상황이라면 자만하지 말고, 지금부터 이익 실현 연습을 시작해야 안전하게 자산을 지킬 수 있다.
박세익 대표는 “이번이 영원한 막차”라는 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를 경계했다. 최고점에 팔지 못하더라도, 욕심을 내려놓는 사람이 장기적으로 살아남는다. ‘생선 대가리는 고양이에게 주라’는 오래된 시장 격언이다.
지금 시장에는 분명 기회가 있다. 다만 그 기회는 지수 번호판에 있는 게 아니라, 아직 조명받지 못한 곳에 조용히 쌓여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