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빅쇼트 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해서 엄청난 수익을 낸 그 투자자, 마이클 버리 말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최근에 또 엄청난 베팅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1월 3일에 공개된 13F 보고서를 보면 버리가 운영하는 사이언 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가 나오는데, 솔직히 좀 충격적이다. 요즘 다들 AI 관련주에 열광하고 있는데, 버리는 정반대로 가고 있었다.
팔란티어와 엔비디아 하락에 베팅
버리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팔란티어 풋옵션이다. 무려 9억 달러가 넘는 규모다. 전체 포트폴리오의 66%를 팔란티어 하락에 걸었다는 얘기다. 팔란티어는 AI 데이터 분석 회사로 최근 몇 년간 주가가 엄청나게 올랐던 종목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큰 포지션이 엔비디아 매도옵션이다. 약 1억 8천만 달러 규모다. AI 혁명의 중심에 있는 엔비디아마저 하락에 베팅했다는 건 버리가 AI 시장을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포브스에서는 이번 투자를 버리의 경력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위험한 베팅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팔란티어와 엔비디아는 지금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종목들 아닌가.
버리는 10월 말에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우리는 때때로 버블을 본다. 때때로 참여하지 않는 것이 승리일 수 있다.” 돌려 말하긴 했지만 AI 버블을 경고하는 메시지인 것 같다.
대신 화이자와 할리버튼을 샀다
그렇다면 버리는 돈을 어디에 넣었을까. 가장 큰 상승 베팅은 화이자였다. 1억 5천만 달러 규모의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로 화이자 주가가 많이 빠졌는데, 버리는 여기서 기회를 본 것 같다.
에너지 섹터에서는 할리버튼에 6천만 달러를 넣었다. 할리버튼은 세계 2위 석유 서비스 기업이다. 유전 시추하고 장비 공급하는 회사다. 요즘 다들 신재생에너지 얘기하는데 버리는 전통 에너지 산업에 투자한 거다.
그 외에도 몰리나헬스케어, 룰루레몬, 샐리메이 같은 종목들이 포트폴리오에 들어있다. 몰리나헬스케어는 중저소득층 의료보험 회사고, 룰루레몬은 요가복 브랜드다. 샐리메이는 학자금 대출 회사다. 전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이다.
브루커 우선주도 눈에 띈다. 이건 배당률이 6.375%나 된다. 옵션으로 고위험 베팅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배당 수익도 챙기겠다는 전략인 것 같다.
기술주는 다 팔아버렸다
더 흥미로운 건 버리가 2분기와 3분기 사이에 포트폴리오를 거의 다 갈아엎었다는 점이다. 메타플랫폼, 알리바바, JD닷컴, ASML 같은 기술주들을 전부 정리했다. 헬스케어 관련 종목이었던 유나이티드헬스나 리제네론도 빠졌고, 에스티로더 같은 소비재 종목도 없어졌다.
이렇게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바꿨다는 건 버리가 시장을 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뜻이다. AI나 기술주보다는 헬스케어, 에너지 같은 전통 산업이 더 매력적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버리의 투자 스타일
마이클 버리는 원래 역발상 투자로 유명한 사람이다. 다들 좋다고 할 때 의심하고, 다들 나쁘다고 할 때 기회를 찾는다. 2000년대 중반에 모두가 부동산 시장을 낙관할 때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에 베팅해서 대박을 쳤다. 영화 빅쇼트가 바로 그 이야기다.
이번에도 비슷한 패턴이 보인다. 지금 시장은 AI에 열광하고 있다. 엔비디아 주가는 몇 년 사이에 10배 가까이 올랐고, 팔란티어도 엄청나게 올랐다. 그런데 버리는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물론 버리의 모든 예측이 맞았던 건 아니다. 테슬라 주가 하락에 베팅했다가 손실을 본 적도 있다. 그래도 그의 움직임을 무시할 수는 없다. 적어도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시그널이다.
AI 버블인가 혁명인가
사실 AI가 버블이냐 아니냐는 지금도 논쟁 중이다. 버블이라고 보는 쪽에서는 기업들의 실제 수익에 비해 주가가 너무 높다고 말한다. 과거 닷컴 버블 때랑 비슷한 패턴이라는 지적도 있다.
반대로 AI 혁명이 진짜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AI가 산업 전반에 적용되고 있고, 생산성도 올라가고 있다는 거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버리는 전자 쪽에 무게를 둔 것 같다. 하지만 13F 보고서는 9월 말 기준이라 지금은 포지션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보고서에는 옵션의 행사가격이나 만기일도 안 나와 있어서 정확한 전략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화이자는 왜 샀을까
화이자 투자는 좀 흥미롭다. 코로나 백신으로 엄청난 수익을 냈던 회사인데, 팬데믹이 끝나면서 주가가 많이 빠졌다. 한때 60달러 가까이 갔던 주가가 지금은 30달러 초반대다.
버리는 여기서 저평가 기회를 본 것 같다. 화이자는 백신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다양한 의약품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고, 고령화 시대에 헬스케어 수요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주가가 반 토막 났으니 가치투자 관점에서는 매력적일 수 있다.
할리버튼도 비슷한 논리다. 신재생에너지가 뜬다고는 하지만 석유와 가스 수요가 당장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최근 몇 년간 에너지 기업들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면서 공급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개인 투자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버리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무작정 따라하는 건 위험하다. 그는 수십억 달러를 운용하는 전문 투자자고, 옵션 같은 파생상품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사람이다. 개인 투자자가 똑같이 하기는 어렵다.
다만 버리의 움직임에서 힌트는 얻을 수 있다. 지금 AI 관련주에 투자하고 있다면 밸류에이션을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주가가 기업의 실제 가치나 수익성에 비해 너무 높게 올라간 건 아닌지 말이다.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가져가는 것도 중요하다. AI 관련주만 잔뜩 갖고 있기보다는 헬스케어, 에너지, 필수소비재 같은 방어적인 종목들도 섞어두는 게 좋다. 시장이 흔들릴 때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화이자나 할리버튼 같은 종목들은 배당도 주고 있어서 장기 보유하기에도 나쁘지 않다. 요즘 금리가 높아서 채권 수익률도 괜찮지만, 배당주도 여전히 매력적인 선택지다.
역사는 반복될까
마이클 버리가 또 한번 시장을 맞출 수 있을까. 솔직히 알 수 없다. 2008년에는 맞았지만 테슬라 베팅에서는 틀렸다. 투자는 원래 그런 거다. 100% 맞는 예측 같은 건 없다.
다만 버리 같은 큰손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시장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건 도움이 된다. 지금 모두가 AI에 열광하고 있을 때, 반대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건 한쪽으로만 쏠리는 거다. 다들 사니까 나도 산다는 식으로 가면 나중에 큰코다친다. 버리의 베팅이 맞든 틀리든, 적어도 우리는 다양한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앞으로 몇 개월, 몇 년 후에 AI 시장이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버리가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분명 시장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지금이 과연 AI 투자의 적기인지, 아니면 조금 쉬어가야 할 때인지 말이다.
투자는 결국 자기 판단이다. 버리의 전략을 참고하되, 내 상황과 투자 목표에 맞게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실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투자해야 한다. 버리처럼 큰돈을 굴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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