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코스피가 꽤 괜찮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70%대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오랜만에 국내 증시가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SK하이닉스와 SK스퀘어가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12월 11일 한국거래소는 SK하이닉스와 SK스퀘어를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1년 전과 비교해서 주가가 200% 넘게 올랐고, 최근 15일 동안의 종가 중에서 최고가를 찍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붐과 메모리 슈퍼사이클이라는 호재를 받으며 1년 사이에 230%나 올랐다. SK스퀘어도 SK하이닉스 덕분에 훈풍을 맞았고, 상법개정 이슈까지 겹치면서 같은 기간 290% 상승했다. 숫자만 보면 정말 놀라운 상승세다.
투자경고가 지정된 당일에는 선물과 옵션 만기가 겹치는 네 마녀의 날이기도 했다. 이 영향으로 SK하이닉스는 장중에 낙폭을 키우며 전날보다 2만2000원 떨어진 56만5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락률로는 3.75%다. SK스퀘어는 더 많이 빠져서 5.09% 하락한 30만7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투자자들은 왜 화가 났을까
투자경고 종목 제도 자체는 나쁜 제도가 아니다. 주가가 갑자기 급등하거나 소수의 계좌에 매매가 몰릴 때 불공정거래 가능성을 경고하는 장치다. 그동안은 주로 시가총액이 작은 코스닥 종목들이 이 제도의 대상이었다. 변동성이 큰 작은 종목들에게 투자자들이 조심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순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좀 다르다. 코스피가 최고가를 계속 경신하면서 투자경고 지정 건수가 72건이나 됐다. 지난해 전체가 44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다. 가장 높은 등급인 투자위험 지정도 7건으로, 지난해의 7배 수준이다.
문제는 이제 대형주들도 줄줄이 투자경고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시가총액 19조원이 넘는 현대로템이 전날 투자경고 종목이 됐고, 46조원 규모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투자주의 종목에 올랐다. 49조원짜리 두산에너빌리티도 12월 8일에 투자경고를 받았다.
한 SK하이닉스 투자자는 “엔비디아나 예전 테슬라 주가가 수백 퍼센트 올랐을 때 투자경고 받았다는 얘기 들어본 적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증시에는 이런 제도 자체가 없다. 그는 이어서 “몇 년 동안 주가가 박스권에 갇혀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회사가 최근에 재평가되면서 정상화되고 있는데, 오히려 투자경고가 나오니 한국 증시의 매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특히 증권사들이 제시한 SK하이닉스 목표가가 현재 주가보다 높은 상황에서 경고조치가 나온 건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실적이 뒷받침되는 정당한 상승인데 제도적으로 제약을 받는 것이 말이 되냐는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더 심해지는 건 아닐까
사실 SK하이닉스는 요즘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다. 엔비디아의 AI 칩에 들어가는 HBM 메모리를 독점 공급하면서 실적이 급성장하고 있다.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좋지 않아서 주가가 제자리걸음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상승은 어쩌면 당연한 재평가 과정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투자경고가 나오니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한국 증시가 그동안 저평가되어 있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얘기가 계속 나왔는데, 이런 식의 제도 운영이 오히려 그 문제를 더 심화시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거래소도 이런 목소리를 의식한 것 같다. SK하이닉스 매매 상황을 고려해서 투자경고 종목 지정 요건을 바꾸기로 했다고 밝혔다. 단순히 수익률만 보는 게 아니라 주가지수 대비 초과수익률을 기준으로 하거나, 시가총액 상위 종목은 아예 제외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됐다고 해서 거래가 막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사고팔 수 있다. 다만 변동성이 커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신호 정도로 받아들이면 된다. 단기적으로는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주가가 흔들릴 수 있지만, 장기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업의 실적과 전망이 더 중요하다.
SK하이닉스의 경우 AI 반도체 시장이 계속 성장하고 있고, HBM 수요도 여전히 강하다. 단기적인 제도 이슈보다는 이런 펀더멘털이 더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다만 이번 사태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국 증시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적 개선으로 인한 정당한 주가 상승까지 제도적으로 막는다면, 외국인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한국 시장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거래소가 제도 개선을 약속한 만큼, 앞으로 어떻게 바뀌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제도 개선으로 이어져서 좀 더 합리적이고 매력적인 시장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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