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주가가 요즘 정말 무서운 속도로 오르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17만원대였는데, 11월 들어서는 60만원을 넘어섰다. 306일 만에 262%나 오른 셈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제 고점 아니야?”라는 말이 나올 법한데, 증권가에서는 오히려 목표주가를 더 올리고 있다.
심지어 SK증권은 목표주가를 100만원이라고 제시했다. 증권사 25곳의 평균 목표주가도 69만 8,462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AI가 바꾼 반도체 시장의 판도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가 있다. 이번에는 과거와 다르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의 주가 상승은 단순히 반도체 경기가 좋아져서가 아니라, 시장 구조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가장 큰 변화는 인공지능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이다. ChatGPT 같은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전 세계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다. 마켓츠앤마켓츠 자료를 보면, 글로벌 AI 시장 규모가 2020년 378억 달러에서 2024년 2,576억 달러로 커졌다. 연평균 성장률이 61.6%나 된다.
문제는 AI를 돌리려면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가 필수인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 11월 3일 “많은 기업이 메모리 반도체 공급을 요청해 어떻게 다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공급 병목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HBM이라는 게임 체인저
여기서 등장하는 게 HBM(고대역폭메모리)이다. HBM은 D램을 여러 층으로 쌓아서 만든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인데,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훨씬 빠르다. ChatGPT 같은 생성형 AI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데, 이때 HBM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6월 세계 최초로 HBM3를 양산했고, 계속해서 성능을 높여 올해는 HBM4 12단 양산 체제까지 구축했다. 흥국증권 리서치센터는 SK하이닉스의 내년도 HBM4 매출액이 약 194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8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쟁사인 삼성전자나 미국 마이크론의 예상 매출을 훨씬 넘어서는 규모다.
힘의 균형이 바뀌었다
더 중요한 건 시장의 주도권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반도체 업체들이 고객사의 주문을 예측해서 미리 공장을 늘리고 생산했다. 그러다 보니 예측이 빗나가면 재고가 쌓이고, 가격이 떨어지고, 불황이 시작되는 패턴이 반복됐다. 2~3년마다 찾아오는 반도체 사이클이 바로 이런 구조 때문이었다.
그런데 AI의 등장으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수요가 워낙 많다 보니 이제는 고객사가 먼저 주문하고, 그다음에 반도체 업체가 공장을 늘리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BNK투자증권 이민희 연구원은 “과거 IT 제품 위주의 사이클과 달리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는 반도체 수주 계약 방식을 장기로 바꿔 제품의 구조적인 공급 부족을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다올투자증권 고영민 연구원도 “지난 2년 동안은 AI 투자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제품만 호황이었는데, 이 AI에 대한 흐름이 확장되면서 전반적인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 확대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주가 평가 방식까지 바뀌고 있다
SK증권이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100만원으로 제시한 건 단순히 숫자가 큰 것보다 더 의미가 있다. 평가 방식 자체를 바꿨기 때문이다.
원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은 PBR(주가순자산비율)로 평가했다. 반도체 사이클에 따라 실적이 널뛰기를 하다 보니, 순이익보다는 안정적인 순자산을 기준으로 봤던 것이다. 그런데 SK증권은 이번에 PER(주가이익비율) 방식을 적용했다. 내년 예상 주당순이익에 PER 11배를 곱해서 목표주가 100만원을 계산했다.
SK증권 한동희 연구원은 “AI 사이클 내 메모리 산업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면서 “과거와 달리 SK하이닉스의 실적은 최근 3년간 거시경제 흐름에 연동되지 않고, 메모리 사이클의 강도는 더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사이클에 따른 이익 변동성이 예전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HBM이 없던 시절에는 범용 메모리 전방 수요만으로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이 움직이다 보니 부침이 있었다”면서 “SK하이닉스가 HBM을 보유하게 된 이후로는 사이클 변동에 따른 이익 변동성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 사도 될까?
증권사 25곳의 평균 목표주가가 69만 8,462원이니, 현재 주가인 57만원대에서 보면 아직 20% 정도 상승 여력이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투자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
긍정적인 부분을 먼저 보면, SK하이닉스는 HBM 기술에서 경쟁사를 확실히 앞서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들의 AI 투자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HBM은 일반 D램보다 가격도 비싸고 마진도 높아서 수익성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리스크도 있다. 가장 큰 건 AI 거품론이다. iM증권 송명섭 연구원은 “현재 AI 붐을 오픈AI 등의 기업이 이끌고 있지만, 계속해서 순손실이 많이 발생하면 갑자기 투자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며 “앞으로도 지금처럼 어마어마한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마냥 낙관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글로벌 빅테크들이 처음에는 잉여 현금으로 AI에 투자했지만, 최근에는 회사채를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늘었다. 투자 여력에 한계가 올 수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경쟁 심화도 무시할 수 없다. 삼성전자도 HBM 양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고, 마이크론도 추격하고 있다. 미중 반도체 갈등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도 여전하다.
결국 타이밍의 문제
SK하이닉스 주가가 이렇게 오른 건 분명 이유가 있다. AI 시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작됐고, SK하이닉스는 그 중심에 있다. 시장 구조가 바뀌면서 반도체 업체가 주도권을 쥐게 됐고,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까지 바뀌고 있다.
하지만 주가가 이미 많이 올랐고, SK하이닉스는 투자주의종목으로 지정될 만큼 변동성도 크다. 지금 당장 뛰어들기보다는, 조정이 올 때를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다. 분기 실적을 확인하면서 조금씩 접근하는 전략도 괜찮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번 SK하이닉스의 상승은 과거의 반도체 호황과는 다른 성격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경기가 좋아져서가 아니라, 산업의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도 이전보다 높은 목표주가를 제시하는 것이다.
투자는 결국 본인의 판단이다. 다만 SK하이닉스를 볼 때는 단순히 차트만 볼 게 아니라, AI 시장의 성장성과 HBM 수요, 경쟁사 동향, 글로벌 빅테크의 투자 지속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주가가 내려갈 때가 오면, 그때가 진짜 매수 기회인지 아니면 추세 전환의 신호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투자 유의사항: 본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월가 영웅 ‘피터 린치’가 알려주는 투자 유형 6가지
👉 연준 금리인하 50% 확률에 다우 800포인트 급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