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사이언스가 2026년 임원인사를 발표했다. 언뜻 보면 몇 명의 임원 이동과 승진에 불과해 보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인사를 꽤 의미심장하게 보고 있다. 특히 기업문화실장이라는 핵심 관리 포지션에 SK디스커버리 출신이 들어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번 인사의 핵심은 기업문화실장 교체
SK바이오사이언스는 신지영 GPM실장을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신 부사장은 승진했지만 하던 일을 그대로 계속한다. 글로벌프로그램매니지먼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업과 개발을 담당하는 핵심 부서다.
그런데 진짜 주목할 부분은 따로 있다. 기업문화실장에 안기채 부사장이 새로 선임됐는데, 이 분이 SK디스커버리 출신이라는 점이다. 기존에 기업문화실을 맡고 있던 박종수 본부장은 SK AX로 자리를 옮긴다.
기업문화실이라고 하면 그냥 회식이나 챙기는 부서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평가 기준, 보상 체계, 조직문화 전반을 관장하는 곳이다. 쉽게 말해 직원들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보상할지를 결정하는 부서라는 뜻이다. 이런 곳의 수장이 바뀌었다는 건 회사 운영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사업은 그대로, 관리만 바꿨다
이번 인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사업이나 개발을 담당하는 라인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지영 부사장이 계속 GPM을 맡고 있고, 다른 사업 부서 임원들도 변동이 없다. 파이프라인이나 사업전략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그대로인 셈이다.
대신 관리와 문화를 담당하는 라인만 조정했다. 그것도 SK디스커버리 출신으로 말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지주사가 SK바이오사이언스의 운영 기준을 직접 손보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박종수 본부장이 SK AX로 나가고, 그 자리에 디스커버리 사람이 들어온 것까지 보면, 관리조직 전체가 SK디스커버리 체계로 재편되는 흐름이라는 분석이다.
배경에는 실적 부진이 있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업계에서는 SK바이오사이언스의 지속된 실적 부진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숫자로 보면 확실히 심각하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매출은 2021년 9290억원에서 2024년 2675억원으로 떨어졌다. 3년 만에 70% 넘게 줄어든 것이다. 영업이익률은 더 충격적이다. 2021년에는 51%나 됐는데, 2024년에는 마이너스 51.7%를 기록했다. 돈을 벌기는커녕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본다는 얘기다.
2025년 전망도 밝지 않다. 증권사 컨센서스 기준으로 매출은 6490억원 정도 될 것으로 보이는데, 영업손실이 999억원 예상된다. 천억 가까운 적자가 또 예정되어 있는 셈이다. 구조적으로 뭔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SK바이오팜과의 극명한 대비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건 같은 SK 계열사인 SK바이오팜의 존재다. SK바이오팜은 SK㈜ 직계 계열사인데, 이쪽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SK바이오팜의 매출은 2020년 260억원에서 2024년 5476억원으로 뛰었다. 4년 만에 20배 넘게 성장한 것이다. 2025년에는 7177억원까지 갈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이익률도 2023년 마이너스 10.6%에서 2025년에는 플러스 29.5%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당기순이익률은 무려 41.5%를 기록했다.
SK㈜ 쪽은 잘 되고 있는데, SK디스커버리 산하는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주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같은 바이오 계열사인데 이렇게 극명한 차이가 나니까 말이다.
왜 사업이 아니라 관리를 먼저 바꿨을까
그렇다면 왜 사업 책임자를 교체하거나 전략을 대대적으로 바꾸는 대신, 관리 라인을 조정한 걸까. 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백신 사업의 외부 환경이다. 코로나19 백신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당장 사업전략을 바꾼다고 해서 실적이 확 좋아지기는 어렵다. 파이프라인이 가시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둘째는 현실적인 실행 가능성이다. 사업전략을 바꾸려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반면 평가 기준이나 보상 체계, 조직문화 같은 내부 운영 방식은 상대적으로 빨리 손볼 수 있다. 당장 실적을 끌어올리기는 어렵지만, 회사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기반을 다지는 작업은 가능하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셋째는 내부통제 강화다. 실적이 안 좋을 때는 조직 내부를 단단히 조이는 게 먼저라는 오래된 경영 원칙이 작동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평가와 보상 기준을 재정비하고, 조직문화를 새로 만들어가면서 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시장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건 앞으로의 변화다. 이번 인사가 시작에 불과한지, 아니면 이 정도에서 마무리될지 말이다.
업계는 안기채 부사장의 권한이 어디까지 확장될지를 주목한다. 기업문화실장은 조직 운영의 기준을 만드는 자리다. 평가나 보상 체계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회사 전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 만약 관리 라인 전체가 SK디스커버리 방식으로 재편된다면, 경영 스타일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
다만 이번 인사를 사업전략이 완전히 바뀌는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사업과 개발을 담당하는 조직은 그대로니까 말이다. 신지영 부사장이 계속 GPM을 이끌고 있고, 파이프라인이나 전략의 큰 틀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대신 그 전략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조직 운영 방식이나 관리 체계는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결국 핵심은 실적이다. 실적이 반등 신호를 보이기 시작하면 지금의 체계가 유지될 것이고, 부진이 계속되면 추가적인 변화가 올 수도 있다. 지주사가 얼마나 깊이 관여할지, 조직개편이 어디까지 갈지는 실적 흐름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회사는 “변화 없다”고 했지만
SK바이오사이언스 측은 이번 인사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안 부사장은 SK디스커버리에서 새롭게 영입된 분”이라며 “이번 인사로 사업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종수 본부장의 SK AX 이동이나 신지영 실장의 부사장 승진도 정상적인 인사 절차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추가 변동 여부에 대해서도 “이번 인사가 전부”라고 선을 그었다. 더 이상의 부사장급 인사 변동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장은 회사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기업문화실장이라는 민감한 자리에 지주사 출신을 앉혔다는 것 자체가 메시지라는 해석이다. 당장 사업전략을 바꾸는 건 아니더라도, 내부 운영 방식을 디스커버리 기준으로 맞춰가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변화의 시작점일 수도
겉으로 보기에 이번 인사는 크지 않다. 부사장 한 명 승진하고, 실장 한 명 교체되고, 본부장 한 명 다른 회사로 간 게 전부다. 하지만 어떤 포지션이 바뀌었는지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업문화실장은 단순한 관리직이 아니다. 회사가 직원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보상하며, 어떤 문화를 만들어갈지를 결정하는 자리다. 여기에 SK디스커버리 출신이 앉았다는 건, 지주사가 본격적으로 운영 기준을 조정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수년간 실적 부진에 시달려왔다. 코로나19 백신으로 잠깐 호황을 누렸지만, 그 이후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같은 계열사인 SK바이오팜이 승승장구하는 것과 대비되면서 부담은 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이번 인사다. 사업전략을 당장 바꾸기는 어렵지만, 운영 방식은 손볼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리 축 재정비가 실적 반등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더 큰 변화의 전조인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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