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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만이 답이 아니다” K-제조업 신냉전 새 수혜자로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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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대한민국 제조업이 예상치 못한 반사이익의 중심에 섰다. 반도체에 쏠린 시장의 눈을 피해, 방산(防産)·조선·전력기기·원전이라는 ‘K-제조 4대 축’이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글로벌 밸류체인의 핵심으로 진입하고 있다.


신냉전 구조 탄생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30여 년간 세계 경제를 지탱해 온 원칙은 ‘효율성’이었다. 생산은 가장 싼 곳에서, 설계와 금융은 서방에서. 이 공식이 만들어 낸 것이 중국 중심의 글로벌 밸류체인이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마스크 하나조차 자급하지 못하는 서방의 민낯을 드러냈고, 2022년 러-우 전쟁은 단일 국가 에너지 의존의 위험성을 유럽 전역에 각인시켰다. 공급망의 효율성보다 ‘안보’와 ‘복원력(resilience)’이 우선시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미·중 패권 경쟁의 4대 축으로 군비(Arms)·기술(Tech)·에너지(Energy)·통화(Currency)를 꼽는다. 냉전 시대 미·소 대결이 수십 년을 이어갔듯, 이 구조적 경쟁은 최소 반세기 이상 지속될 것이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한국’, 제조 공백을 메울 유일한 파트너

미국과 유럽은 지난 수십 년간 제조를 아시아에 위탁하면서 스스로 무기를 만들고 선박을 건조하는 역량을 잃어버렸다. 반면 한국은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끝까지 제조 역량과 엔지니어링 기술을 유지해 왔다.

그 결과 지금 한국은 ‘신뢰할 수 있고 빠르게 대량 생산이 가능한 전략적 파트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반도체·방산·조선업은 더 이상 단순한 수출산업이 아니라 국가의 전략 자산”이라고 규정했다.

“안보가 곧 경제인 시대, K-제조업은 글로벌 패권 경쟁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코스피 시장은 이 구조적 변화를 아직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SK증권 리서치센터는 현재 코스피의 선행 PER이 약 8.5배 수준으로, 20배를 상회하는 미국·일본 증시에 비해 여전히 상당한 상승 여력이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K-방산, ‘무기 판매’에서 ‘생태계 수출’로

올해 한국 방산은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DB금융증권과 하나증권은 올해 K-방산 수출이 약 377억 달러(약 56조 6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2025년 실적(154억 달러)의 약 2.4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K-방산의 강점은 단순히 가격 경쟁력이 아니다. 55년간 축적된 기술력과 빠른 납기(생산 케파)가 핵심 무기다. K9 자주포, K2 전차, KF-21 전투기 등 검증된 무기 체계가 동유럽·중동을 넘어 미국·캐나다 등 선진국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주목할 변화는 수출 모델 자체가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완제품을 수출하던 ‘1차 수출 모델’을 넘어, 이제는 현지에 생산 기지를 구축하고 기술·생산·유지보수(MRO)까지 포괄하는 ‘생태계 수출’로 전환 중이다. 채우석 한국방산학회 이사장은 “방위산업을 단순한 무기 제조업을 넘어 국가 경제안보와 외교력을 동시에 견인하는 국가 전략 플랫폼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산 수출의 또 다른 특성은 이른바 ‘락인(lock-in) 효과’다. 한 번 무기 체계를 도입하면 향후 수십 년간 부품 공급과 유지보수가 수반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수주 확대는 단기 실적을 넘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만들어 낸다.


K-조선, 미국이 부른 구원투수

레이건 행정부 시절 조선업 보조금이 중단된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무너진 미국 조선업의 현재 글로벌 점유율은 약 1%에 불과하다. 군함을 포함한 선박을 자국에서 대량 건조할 능력을 사실상 상실한 것이다.

이 공백을 채울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된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MASGA(마스가)’는 양국이 조선·해군 역량을 결합하는 윈-윈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는 그 상징적 거점이다.

LNG 운반선 시장에서도 한국의 독주는 뚜렷하다. NH투자증권은 2026년 글로벌 LNG선 발주 예상량 77척 중 한국 조선사가 72척을 수주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중공업은 제너럴다이내믹스 산하 NASSCO와 협력해 FLNG(부유식 LNG 처리선) 4기 수주를 확정할 전망이며, 조선 3사의 2026년 수출은 전년 대비 8.6% 증가한 339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미국과의 함정 건조 협력이 본격적인 매출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증권가에서는 한국 조선사의 미국 해군 수주 매출이 2028년부터 본격 인식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26년은 협력 기반을 다지는 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력기기·원전, AI 혁명이 부른 전력 수요

인공지능(AI) 혁명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국 제조업에 기회를 열었다.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 센터 건설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이는 변압기·차단기 등 전력 기기의 글로벌 수요 급증으로 이어졌다.

HD현대일렉트릭 등 한국 전력 인프라 기업들은 이 흐름의 최대 수혜주로 꼽힌다. 골드만삭스는 코스피 목표 지수 ‘1만 피’ 달성의 핵심 동력으로 조선·방산과 함께 전력기기 섹터를 명시적으로 지목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30년까지 전력 쇼티지(부족)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며 이 분야의 구조적 성장성을 강조했다.

원전 수출도 새로운 성장축이다. ‘팀코리아’ 방식의 해외 원전 수주가 본격화될 경우, 한국 원전 관련 기업들의 글로벌 입지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자에게 주는 시사점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단순한 경기 사이클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신냉전의 지정학적 구도와 AI 문명의 전환이라는 두 가지 메가트렌드가 맞물린 현상이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투자 원칙은 ‘타이밍(Timing)보다 타임(Time)’이다. 하루하루의 변동성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수십 년에 걸친 구조적 변화의 흐름을 믿고 우량 주식이나 ETF를 장기 보유하는 전략이 최종 승자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조언이다.

단, 리스크 요인도 간과해선 안 된다. 조선업의 경우 미국과의 협력이 가시화되기까지 수년이 소요될 수 있고, 전력기기 섹터는 외국인 투자자의 차익 실현 압력에 노출돼 있다. 방산 역시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 시 수요가 급감할 수 있는 사이클성을 내재하고 있다.

※ 본 기사는 공개 시장 데이터 및 증권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니며, 투자 결정은 개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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