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AI 시대의 슈퍼스타로 떠오른 HBM보다 우리가 평소에 쓰는 일반 DRAM의 수익성이 더 좋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가격 차이가 많이 줄어들었다
내년에 본격적으로 공급될 HBM4 36GB 제품 가격은 개당 500달러 중반대로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GB당 가격으로 따지면 15달러 정도다.
그런데 일반 DRAM은 어떨까. PC에 들어가는 DDR5 16Gb 제품의 현물 가격이 26.3달러다. GB당으로 계산하면 약 13달러 수준이다. 서버용 DDR5 RDIMM 64GB도 최근 780달러 안팎에 거래되면서 GB당 약 12달러까지 올랐다.
예전에는 HBM과 범용 DRAM의 GB당 가격 차이가 4~5배나 났었다. 지금은 그 격차가 많이 좁혀진 상태다. 물론 HBM4는 아직 확정된 계약 가격이 아니고, DDR5 현물 가격은 최근 수급 불균형으로 급등한 것이긴 하다. 하지만 추세 자체는 분명해 보인다.
진짜 돈이 되는 건 범용 DRAM
가격보다 더 중요한 게 수익성이다. UBS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마이크론의 2025년 12월부터 2026년 2월까지 HBM 매출총이익률을 62%, 범용 DRAM 이익률을 67%로 전망했다. 2026년 내내 HBM 이익률은 61~62%에 머무는 반면, 범용 DRAM 이익률은 70%대 이상으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HBM은 만들기가 까다롭다. 베이스다이 제작에 파운드리 공정을 써야 하고, 고난도 최첨단 패키징 과정도 거쳐야 한다. 여러 칩을 쌓아 올리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반면 범용 DRAM은 상대적으로 제조 과정이 단순하면서도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 입장에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AI 메모리의 상징이 되어버린 HBM에 올인할 것인가, 아니면 진짜 돈이 되는 범용 DRAM에 주력할 것인가.
삼성전자는 양쪽 다 잡는다
월 65만장이라는 업계 최대 DRAM 생산 능력을 가진 삼성전자는 실리와 명분을 모두 챙기는 전략을 쓰고 있다.
HBM 쪽에서는 지난 9월 HBM3E 12단 제품이 엔비디아 품질테스트를 통과하면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이제 HBM4에 주력해서 주요 고객사에 경쟁사 못지않은 물량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코어다이에 10나노 6세대 DRAM을, 베이스다이에 4nm 공정을 적용하는 승부수가 통하고 있다는 평가다. 현재 품질 테스트를 받고 있는 주요 고객사로부터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평택캠퍼스를 중심으로 HBM4용 1c DRAM 라인에 투자하고 있다.
범용 DRAM에서도 움직임이 활발하다. 1a DRAM 라인을 1b DRAM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GDDR7, LPDDR5X 같은 최신 범용 DRAM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모바일용과 서버용 최신 범용 DRAM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메모리 슈퍼 호황의 수혜를 최대한 가져가겠다는 전략이다.
SK하이닉스도 전략을 바꾸고 있다
그동안 최첨단 HBM의 엔비디아 공급에 집중했던 SK하이닉스도 최근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다.
HBM에서는 고객사 일정에 맞춰 HBM4 생산을 서두르기보다는 당분간 HBM3E 공급에 주력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HBM3E가 HBM 시장의 주력 제품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주요 고객인 엔비디아가 최근 AI 가속기 H200의 중국 수출 허가를 받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H200에는 SK하이닉스의 HBM3E 제품이 주로 들어간다.
범용 DRAM 쪽 투자는 대폭 늘린다. 내년 SK하이닉스는 이천캠퍼스에서 공정 전환을 통해 1c DRAM 생산능력을 월 14만장 추가할 계획이다. 월 16만17만장까지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올해 말 월 2만장이던 1c DRAM 생산능력이 내년에는 16만19만장으로 확대된다. 전체 DRAM 생산 능력의 약 30%, 범용 DRAM 생산 능력의 절반 가까이를 1c DRAM으로 바꾸는 셈이다.
재미있는 건 SK하이닉스의 1c DRAM은 HBM이 아니라 GDDR7 같은 범용 DRAM을 만드는 데 쓰인다는 점이다. HBM3E와 HBM4에는 1b DRAM을 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새로운 국면
AI 시대가 열리면서 HBM이 기술력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HBM을 얼마나 잘 만드느냐가 메모리 반도체 회사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수익성을 따져보니 범용 DRAM이 더 매력적인 사업이라는 게 드러나고 있다. 이익률 70%라는 숫자는 무시하기 어렵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제 기술력과 수익성,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HBM으로 기술 리더십을 지키면서도 범용 DRAM으로 실질적인 돈을 버는 투 트랙 전략이 내년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계속되는 가운데, 두 회사의 선택이 앞으로 시장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만하다. 결국 기술도 중요하지만 수익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오래된 진리가 다시 한번 확인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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