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AI 투자 시장이 심상치 않다. 엔비디아가 3·4분기 실적으로 매출 570억 달러를 찍으며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했는데도,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계속되고 있다. S&P500 지수가 지난주에만 2% 떨어지고, 나스닥은 11월 들어 6% 넘게 하락했다.
공매도 투자자인 짐 차노스와 마이클 버리가 AI 관련 주식이 고평가됐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중국 AI 칩 시장 점유율이 95%에서 0%로 떨어졌다고 말하면서 거품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미국 경제 성장의 92%가 AI 투자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AI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보니, 거품이 꺼지면 어떻게 될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590조원 쏟아붓는데 돈은 못 버는 빅테크
올해 빅테크 기업들이 AI에 쏟아붓는 돈이 40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9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게 얼마나 큰 돈이냐면, 유럽연합 전체가 작년에 국방비로 쓴 돈보다 많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2028년까지 빅테크와 스타트업이 AI 칩, 서버, 데이터센터 같은 곳에 총 2조 9000억 달러를 투자할 거라고 전망하고 있다. 미국 GDP의 0.5%에 맞먹는 규모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알파벳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이 대형 데이터 센터를 짓고 클라우드 성장률 30%를 찍고 있지만, 정작 수익은 제대로 안 나오고 있다. MIT 연구에서는 400억 달러 넘게 투자했는데도 생성형 AI 투자의 95%가 측정 가능한 수익을 못 내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구글은 데이터센터에 수백억 달러를 쏟아붓고도 뚜렷한 수익을 못 내고 있고, 오픈AI는 아예 1조 5000억 달러를 AI 인프라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IT 기업들이 AI 칩과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엄청난 돈을 쓰고 있는데 이로 인한 수익은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25년 전 닷컴 버블이 떠오르는 이유
IMF 총재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가 요즘 주식 가치가 25년 전 닷컴 거품 붕괴 때랑 비슷한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며 경고했다. 글로벌 주가 급등이 AI 잠재력에 대한 낙관 때문인데, 금융 환경이 갑자기 돌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조정이 오면 세계 경제 성장까지 끌어내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이코노미스트 애덤 슬레이터도 거품을 식별하기는 쉽지 않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일부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AI 관련 기업 총수들 스스로도 거품이 생기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지난달 행사에서 일부 AI에서 거품이 발생하고 있다고 직접 발언했고,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도 AI의 급격한 개발과 투자 급증으로 인한 거품이 생기고 있다고 시인했다. 다만 저커버그는 시대를 바꿔놓을 수 있는 기술의 전환을 앞두고 리스크가 겁나서 투자 시기를 놓칠 수 없다는 철학을 드러냈다. 막대한 투자를 하지 않는 것으로 인한 실패를 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 가치만 1년에 1469조원 증가
아직 흑자도 못 내고 있는 대표적인 AI 스타트업 10곳의 기업가치가 지난 1년 동안 합쳐서 1조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469조원이 불어났다. 유례없는 증가다. 이 거품이 꺼지면 다른 경제 부문까지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년간 미국 벤처자본가들은 지출의 3분의 2인 약 1610억 달러 이상을 AI에 투자했다. 벤처자본가들도 거품을 인정하면서도 세계를 바꿔놓을 수 있는 새로운 기업을 탄생시킨다며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다. 투자자들은 AI 기술이 2조 달러 규모의 새로운 시장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0년 닷컴 버블 당시 인터넷 기업에 투자된 벤처 자본이 105억 달러였는데, 올해 AI 기업에만 2000억 달러를 쏟아부을 것으로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은 예상하고 있다. 거의 20배 차이다. 베서머 벤처 파트너스의 투자자 사미르 돌라키아는 AI를 두고 “숫자에 0 하나를 더 붙여주는 기술”이라고 표현했다.
무분별한 투자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연 매출이 500만 달러인 스타트업이 기업가치를 5억 달러로 고평가받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 실리콘밸리 벤처 자본가가 지적했다. 세일즈포스 CEO로 AI에 대규모 투자를 한 마크 베니오프는 분명히 희생되는 기업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AI에 투자된 자본 중 1조 달러가 낭비될 수 있지만 10조 달러가 넘는 새로운 가치를 결국 만들어낼 것이라며, 승자가 될 수 있는 기업들을 찾아내 집중하는 것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모든 게 샘 올트먼의 손에 달렸다
AI에서 오픈AI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오픈AI는 챗GPT 공개 3년 만에 연 매출이 130억 달러로 증가하며 스타트업으로는 보기 드물게 빠른 성장을 했다. 오픈AI의 투자는 IT 산업에도 힘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메타와 구글처럼 이미 IT 생태계를 갖춘 기존 빅테크 기업들과 경쟁을 벌이면서 이전 세대 스타트업들과 달리 수익을 창출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벤처자본 역사 전문가인 세바스천 말러비는 AI의 미래는 인간과 같거나 뛰어넘는 수준의 지능을 갖춘 AI인 범용인공지능 AGI 개발에 달려있다며, 결국 모든 것이 올트먼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번스틴의 애널리스트 스테이시 래스곤은 올트먼에 대해 앞으로 글로벌 경제를 10년간 추락시키거나 약속된 땅으로 모두 이끌어낼 힘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닷컴 거품 붕괴 당시에 비해 몰락하는 기업도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오픈AI 같은 스타트업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들이 실패로 끝날 경우 미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있다. 결국 빠르게 성장하는 일부 소수의 AI 기업들이 독점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금까지 확실한 승자는 엔비디아뿐
IT 산업은 그동안 성장과 침체를 반복하며 버텨왔다. 2000년 닷컴 거품 붕괴로 인터넷 기업들이 대거 사라지기도 했다. 지금의 AI 투자 열풍도 비슷한 길을 걸을지, 아니면 정말 세상을 바꿀 새로운 시대를 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지금까지는 반도체를 만드는 엔비디아 같은 기업만 실질적인 이득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AI 칩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엔비디아는 매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AI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들은 아직 돈을 제대로 못 벌고 있지만, AI를 만들기 위한 도구를 파는 기업은 확실하게 수익을 내고 있는 셈이다.
거품이든 혁명이든, AI 산업의 미래는 앞으로 몇 년 안에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투자자들은 실질적인 수익 모델을 가진 기업을 찾는 게 중요하고, AGI 개발 가능성과 거품 붕괴 시에도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을 판별하는 눈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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