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독주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 가운데, K-배터리의 글로벌 입지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발표한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규모와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수요는 전년 대비 25% 증가한 약 950GWh를 기록했다. 이는 2024년 한 주 동안의 평균 수요가 10년 전 한 해의 전체 수요를 초과하는 놀라운 성장세다.
중국, 시장 지배력 압도적 확대
지역별 수요 비중을 보면 중국의 압도적인 지배력이 더욱 뚜렷해졌다.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수요에서 중국이 59%를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했고, 유럽연합(EU)과 미국은 각각 13% 수준에 그쳤다.
중국의 독주를 견인한 핵심 요인은 LFP 배터리의 급속한 확산이다. LFP는 기존 니켈·코발트(NMC) 배터리보다 kWh당 약 30% 저렴하면서도 성능이 상향 평준화되며 대중형 전기차 시장의 주력 기술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LFP 배터리는 전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으며, 중국은 자국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의 약 75%를 LFP로 충족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EU에서 2년 연속 90% 이상 증가하며 전기차 내 LFP 점유율이 10%를 돌파했고, 유럽이나 미국에서 판매된 거의 모든 LFP 배터리가 중국산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배터리 3사, 글로벌 점유율 급락

한국 배터리 업계의 현실은 더욱 우려스럽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1~12월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의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시장 점유율은 전년 대비 4.7%포인트 하락한 18.4%를 기록했다.
개별 기업별로 보면 LG에너지솔루션이 전년 대비 1.3% 성장하며 3위를 유지했고, SK온은 12.4% 성장률로 5위에 올랐다. 반면 삼성SDI는 -10.6%의 역성장을 기록하며 부진을 면치 못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중국 시장을 제외한 비중국 시장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1분기 비중국 시장에서 국내 배터리 3사의 시장 점유율은 40.3%로, 지난해 1분기(45.7%)보다 5.4%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중국 기업들의 비중국 시장 점유율 합계는 42.0%로 한국 배터리 3사의 점유율을 1.7%포인트 앞서는 상황이다. 이는 중국 시장의 포함 여부와 무관하게 K-배터리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공급망도 중국 중심으로 재편
중국의 배터리 공급망 장악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IEA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글로벌 배터리 셀의 80%는 중국에서 생산됐으며, 양극재의 85%, 음극재의 90% 이상이 중국산이다.
특히 EU 시장에서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EU 내 중국 업체의 생산능력 점유율은 현재 10% 미만에서 2030년 30%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EU 내 배터리 생산능력에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2022년 85%에서 2024년 30% 수준으로 급락했다. 대신 한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 40%의 셀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어 2030년까지 50%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격 경쟁력이 승부처
배터리 가격 하락도 중국 기업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리튬이온 배터리 팩 가격이 전년 대비 20% 하락하며 2017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광물 가격 하락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치열한 가격 경쟁, 이로 인한 제조사들의 마진 압박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이항구 연구위원은 “중국은 이미 LFP를 통해 완전한 원가 우위를 확보했다”며 “기존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던 상황에서 추가로 더 내렸다는 건, 원가 자체를 다시 깎았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다윈의 바다’ 진입한 배터리 시장

이 연구위원은 “지금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은 ‘다윈의 바다’에 접어들었다”며 “규모의 경제와 원가 경쟁력을 갖춘 몇몇 업체만 살아남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각자 도생으로는 답이 없어 국내 기업들이 공동 연구나 협력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며 정부가 이제라도 과감한 구조개편과 산업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기업들의 가파른 성장세
실제로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2024년 1~7월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은 61.9%에서 65.4%로 상승했다.
CATL은 전년 동기 대비 29.9% 성장률로 글로벌 1위 자리를 견고히 유지했고, BYD는 37.5% 성장률과 함께 글로벌 2위를 기록했다. 특히 BYD는 배터리뿐만 아니라 전기차도 자체 생산하는 뛰어난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2024년 약 414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한국 기업들의 대응 전략 절실
전문가들은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정책 변화에 따른 영향이 배터리 업계 전반에 걸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공급망 다변화, 원가 절감, 기술 혁신 등을 통한 대응이 필수적이다.
SNE리서치는 “2030년까지 글로벌 셀 생산능력은 현재 건설 중이거나 투자 확정된 프로젝트 기준으로 6.5TWh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배터리 공급 과잉이 더욱 심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장기적 관점에서의 기회 요소

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희망적인 요소들도 있다. SNE리서치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이 중국에 대해 보호정책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북미, 유럽 현지 배터리 공장 증설과 완성차 협력 업체의 신차 출시 계획 등이 예정돼 있다”며 “장기적으로 중국 외 지역에서 전기차 시장 성장과 함께 3사의 점유율도 오를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2035년 북미 배터리 생산능력의 58%를 국내 기업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며, 전체적인 글로벌 해외 투자에서는 한국 기업이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해외에만 400GWh의 설비를 보유하고 있어 일본(약 60GWh), 중국(약 30GWh)의 해외 설비보다 크게 앞선다.
결론: 전략적 대응 시급
중국의 LFP 배터리를 앞세운 독주체제가 더욱 공고해지는 가운데,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중국의 가격 공세와 기술 추격에 맞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중국 시장을 제외하더라도 한국 기업들의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는 현실은 단순히 중국 내수 시장의 영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변화를 시사한다. 향후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생산 능력 확장이 아닌 차별화된 기술력과 지속 가능한 공급망 구축이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 배터리 업계는 이에 대한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변화하는 글로벌 시장 환경 속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HBM 열풍에 ‘반도체 부품’ 재조명…한국 기업, 도약 vs 도태 갈림길 – Enrich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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