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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그룹형지의 위험한 도박, 로봇·코인·화장품 ‘3종 세트’ 신사업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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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 요약

  • 패션그룹형지 최준호 부회장, 웨어러블 로봇·스테이블코인·화장품 등 본업과 무관한 신사업 동시 추진
  • 7개월 전 발표한 스테이블코인 사업, 싱가포르 법인조차 미설립…실행력 의문
  • 핵심 기술 없는 로봇 사업, 파트너 의존 구조로 주도권 확보 불투명

본업 버리고 신사업 ‘삼종세트’…패션그룹형지의 모험

패션그룹형지가 급격한 사업 방향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최병오 회장의 장남인 최준호 부회장이 의류 사업 대신 웨어러블 로봇, 스테이블코인, 화장품 등 이종 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면서다.

최 부회장은 그간 패션그룹형지의 근간인 의류 사업의 해외 진출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업과 거리가 먼 신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국내 패션 시장이 인구 감소와 소비 양극화로 성장이 정체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의류 기업의 강점이 로봇 공학이나 금융 영역에서도 유효할지, 여러 신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는 전략이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웨어러블 로봇, 스테이블코인, 화장품…연결고리 없는 3종 세트

최 부회장이 속도를 내고 있는 신사업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웨어러블 로봇이다. 최 부회장이 대표이사를 맡은 형지엘리트는 지난 15일 로봇 전문 자회사 ‘형지로보틱스’를 출범시켰다. 시니어 활동 보조 웨어러블 로봇과 워크웨어용 안전 로봇을 연내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기술 확보를 위해 국내 웨어러블 로봇 전문기업 헥사휴먼케어, 중국 로봇 기업 상하이중솨이로봇과 협력하기로 했다. 기술은 파트너사가 담당하고 형지엘리트는 유통·생산을 맡는 구조다.

둘째는 스테이블코인 사업이다. 형지글로벌은 지난해 7월 싱가포르 법인 설립을 통해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룹 내 2000여 개 매장에서 사용 가능한 자체 결제 플랫폼 ‘형지페이’를 개발하고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연계한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블록체인 기술 기업 아비트럼 재단과의 협력도 발표했다.

셋째는 화장품 사업이다. 형지엘리트가 지난해 말 10대 청소년 타겟 화장품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교복 브랜드 ‘엘리트학생복’에서 축적한 10대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화장품을 만들고 장기적으로 중국·일본·미국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포부다.


“고객·유통망 공통분모” 주장하지만…핵심 역량은 전혀 달라

패션그룹형지는 세 사업 모두 자사 ‘고객’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웨어러블 로봇은 주력 고객인 시니어의 신체 활동을 돕고, 스테이블코인은 대리점 결제 시스템을 고도화하며, 화장품은 교복과 같은 10대 시장을 공략한다는 논리다. 전국 2000개 유통망도 세 사업 모두에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고객과 유통망이라는 공통분모만으로 세 사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각 사업에 필요한 핵심 역량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웨어러블 로봇은 하드웨어·기계공학 중심이고, 스테이블코인은 소프트웨어·금융 중심이다. 화장품은 제조·유통 중심이다. 신사업에 필요한 인력, 파트너, 규제 환경도 각각 다르다. 무리하게 여러 사업을 동시에 확장하다 보면 자원이 분산될 위험도 크다.


7개월 지났는데 법인도 없는 스테이블코인…실효성 의문

신사업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스테이블코인 사업은 발표 후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구체화 단계에 접어들지 못했다. 형지글로벌은 지난해 7월 싱가포르 법인 설립을 통해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싱가포르 최대 은행 DBS, 디지털자산 보안기업 렛저 등과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싱가포르 법인은 아직 설립조차 되지 않았다. DBS, 렛저 등과의 협력도 큰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형지글로벌은 “파트너사들과 협의 중이어서 법인 설립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며 “의견을 청취·논의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중”이라고 해명했다.

최근 발표한 아비트럼 재단과의 협력도 스테이블코인 직접 발행과는 거리가 있다. 아비트럼은 테더나 서클처럼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발행·운영하는 주체가 아니라 블록체인 거래를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 기술을 가진 곳이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은 형지글로벌이 직접 발행·운영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법정화폐 담보 관리, 준비금 운용 등 금융 전문성이 필요하다. 이 분야는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도 핀테크 전문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패션 기업이 이런 금융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로봇 기술 없이 파트너 의존…주도권 확보 가능할까

웨어러블 로봇 역시 마찬가지다. 패션그룹형지는 올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웨어러블 로봇 개발을 추진 중이지만, 로봇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기술 확보를 위해 여러 파트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핵심 기술 개발은 협력 기업들이 맡으면서 형지엘리트는 생산·유통을 우선 담당하게 될 전망이다. 패션그룹형지는 패션 브랜드 대리점 2000여 개를 시니어용 로봇 판매·AS·교육 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시니어 의류를 판매하던 매장이 로봇 판매·관리·사용자 교육까지 담당할 수 있을지에는 의문이 붙는다. 대리점주 교육, 전문 인력 배치, AS 체계 구축 등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형지엘리트는 “30여 년간 시니어 의류를 만들며 인체공학적 설계 노하우를 쌓았기 때문에 착용감이 핵심인 웨어러블 로봇에서 차별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패션그룹형지의 노하우가 일정 부분 로봇 설계에 활용될 수 있다 하더라도 결국 로봇 기술의 핵심은 ‘공학의 영역’이다. 장기적으로는 핵심 기술을 보유한 쪽이 사업의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다.


대규모 투자 필요한데…”자체 자금으로 추진” 현실성은?

형지로보틱스는 현재 “신사업 초기 단계로 대규모 투자나 외부 차입 없이 그룹 차원의 신사업 리소스 범위 내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로봇 사업은 연구개발부터 상용화까지 상당 규모 투자가 필요한 분야다. 외부 자금 조달 없이 자체 자금만으로 충분할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스테이블코인 역시 금융 전문 인력 확보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세 가지 신사업 모두 상당한 자금과 인력이 투입돼야 하는 상황에서 동시다발적 추진이 과연 현실적인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업계 평가 엇갈려…”도전 vs 무리한 확장”

업계에서는 패션그룹형지의 행보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내놓고 있다. 패션 기업이 새 영역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의견이 공존한다.

패션그룹형지는 “신사업은 독립적으로 추진되기보다는 그룹사 간 노하우를 공유하며 단계적으로 시너지를 만들어가는 구조로 접근하고 있다”며 “속도보다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우선으로 하며 올 한해는 기반을 다져가는 단계”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최 부회장이 성장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분야마다 무분별하게 손을 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웨어러블 로봇, 스테이블코인, 화장품은 각각 에이지테크, 핀테크, 뷰티산업으로 최근 주목받는 분야지만, 패션그룹형지가 이들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상당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

패션그룹형지의 신사업이 성공 모델로 평가받을지, 무리한 확장으로 기록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다. 국내 패션 시장의 성장 정체라는 현실 앞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시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핵심 역량 없는 다각화가 오히려 본업까지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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