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에너지솔루션, 혼다 합작공장 매각으로 4조원 현금 확보
- 금산분리 완화 논의 속 투자 옵션 확대 기대
- 전기차에서 ESS로, 배터리 산업 재편 가속화
LG에너지솔루션이 최근 미국 혼다 합작공장 건물을 매각하면서 약 4조2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전기차 시장이 주춤한 상황에서 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혼다 합작공장 건물 매각, 그런데 생산은 계속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혼다 합작 배터리 공장의 건물 자산을 혼다 미국 법인에 넘기기로 했다. 매각 금액은 4조2243억원 규모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건물만 판다는 것이다. 토지와 생산 장비는 그대로 두고 건물만 혼다에 넘긴 뒤, 다시 그 건물을 임대해서 쓰는 구조다.
이런 방식을 자산 경량화 전략이라고 부른다. 공장 부동산에 묶여 있던 큰 돈을 현금으로 바꾸면서도 생산은 그대로 이어갈 수 있다. 혼다는 건물 관리를 맡고,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생산 기술과 공정 운영에 집중하는 식이다. 역할을 명확하게 나눈 셈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결정을 현명한 선택으로 평가한다. 전기차 수요가 예상보다 천천히 늘어나면서 배터리 업체들이 투자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 부동산 같은 고정 자산을 현금화하면 재무 유연성이 높아진다. 차입금을 갚을 수도 있고, 차세대 배터리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도 있다.
금산분리 완화 논의, 4조원이 가진 의미
정부가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LG에너지솔루션이 확보한 4조원의 가치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원칙인데, 이재명 정부가 인공지능과 첨단 산업 육성을 위해 이 규제를 일부 풀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LG그룹 구조를 보면 ㈜LG가 지주회사고, 그 아래 LG화학이 자회사, 다시 그 아래 LG에너지솔루션이 손자회사다. 문제는 손자회사가 새로운 회사나 특수목적법인을 만들 때 지분을 100%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외부에서 돈을 끌어오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배터리 산업은 공장 하나 짓는 데 조 단위 돈이 들어간다. 그런데 자기 돈으로만 투자해야 하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정부가 검토 중인 규제 완화가 현실이 되면 LG에너지솔루션은 확보한 4조원을 종잣돈으로 외부 자본과 손잡을 수 있다. 정책금융이나 사모펀드 같은 곳과 합작법인을 만들어 투자 규모를 키우는 방식이다.
금융리스업 허용도 주목할 부분이다. 제조업체가 만든 제품을 직접 리스할 수 있게 되면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를 파는 것을 넘어 빌려주고 관리하는 서비스 사업까지 할 수 있다. 배터리 구독 서비스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투자은행 관계자는 지금까지 LG에너지솔루션이 해외 투자를 할 때 모회사 지원이나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규제가 풀리면 보유 현금에 파트너 자본을 더해 투자 규모를 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기차 계약 취소도 있었다
같은 시기 LG에너지솔루션은 독일 프로이덴베르크그룹 산하 FBPS와 맺었던 배터리 공급 계약을 해지했다. 금액으로는 3조9217억원 규모다. FBPS가 배터리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하면서 상호 합의로 계약을 정리한 것이다.
다행히 재무적 타격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계약은 표준화된 배터리 모듈을 공급하는 내용이어서 전용 생산 라인을 따로 만들거나 맞춤형 연구개발 비용을 쓰지 않았다. 기존 라인에서 만들 수 있는 제품이었다는 얘기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불확실한 고객사를 정리하고 더 탄탄한 수요처를 찾을 기회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회사는 자동차사업부 산하에 신시장팀을 새로 만들어 전기버스, 전기선박, 레저용 모빌리티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ESS 시장으로 무게중심 이동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주춤한 사이 에너지저장장치, 즉 ESS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이 흐름에 맞춰 사업 구조를 바꾸고 있다.
회사는 최근 조직개편에서 배터리 생산 조직을 하나로 통합했다. 전에는 자동차전지, 소형전지, ESS전지 사업부마다 따로 생산 조직이 있었는데, 이제 최석원 최고생산책임자 부사장 아래로 모두 모았다. 운영 효율화 차원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ESS 배터리 생산에 집중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숫자로 보면 변화가 더 명확하다. LG에너지솔루션의 ESS 수주 잔고는 지난해 50기가와트시에서 올해 3분기 기준 120기가와트시로 140% 넘게 늘었다. 생산 능력도 올해 30기가와트시에서 내년 50기가와트시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전기차 배터리 라인을 ESS용으로 바꾸는 작업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은 이미 ESS용으로 전환해 지난 6월부터 양산에 들어갔다. 캐나다 스텔란티스 합작공장과 충북 오창 공장도 ESS 배터리 라인을 구축할 예정이다.
SK증권 분석을 보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올해 1075기가와트시에서 2030년 2026기가와트시로 89%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ESS 배터리는 같은 기간 288기가와트시에서 745기가와트시로 159% 증가한다. ESS 시장이 전기차보다 거의 두 배 빠르게 성장한다는 뜻이다.
AI 안전기술로 차별화
LG에너지솔루션은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ESS 화재 방지 기술을 개발했다. 그동안 쌓아온 100만개 이상 배터리 데이터를 바탕으로 화재 위험 상황을 미리 잡아내는 시스템이다. 당장 정부 ESS 입찰 사업에 이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정부는 2038년까지 40조원을 투입해 전국에 23기가와트 규모 ESS를 보급하기로 했다. 내년 2월쯤 1조원 규모 540메가와트 ESS 발전 사업자를 선정하는데, 평가 기준에서 화재와 설비 안정성 배점이 크게 높아졌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니켈·코발트·망간 삼원계 배터리보다 안정성이 좋은 리튬인산철 배터리가 유리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이 AI 안전 진단 기술을 적용하는 제품도 리튬인산철 배터리다.
리튬인산철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는 낮지만 원가가 싸고 화재 위험이 적다. 국내 배터리업체들이 주력으로 만들어온 삼원계 배터리는 밀도가 높아 전기차에 유리했지만, ESS에서는 안정성이 더 중요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6월 미국 미시간 공장에서 ESS용 리튬인산철 배터리 양산을 시작했고, 2027년부터 충북 오창에서 1기가와트시 규모로 국내 생산도 시작한다. 여기에 AI 화재 방지 기술력을 더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ESS가 새로운 먹거리
ESS 시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데이터센터 때문이다. 인공지능 투자가 늘면서 데이터센터 구축이 급증하는데,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ESS가 필수다. 전력 생산이 많은 시간대에 남은 전기를 저장했다가 수요가 많을 때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전기차 캐즘으로 배터리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ESS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포드가 LG에너지솔루션과 맺었던 9조6000억원 규모 전기차 배터리 계약을 해지한 것처럼, 전기차 쪽 계약 취소 소식은 계속 들린다.
배터리 업체들은 이런 상황을 오히려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할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단순히 수주 잔고를 유지하는 것보다 수익성 위주로 사업을 정리하고, ESS 같은 성장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에도 전기차 수요 둔화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ESS 배터리 생산량을 늘려 수익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질 거라고 말한다.
LG에너지솔루션이 혼다 합작공장 건물을 매각해 확보한 4조원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의미가 크다. 전기차 시장이 불확실한 지금, 현금 유동성을 높여 재무 건전성을 지키면서 동시에 ESS 같은 새로운 시장에 투자할 여력을 만든 것이다. 여기에 금산분리 규제까지 완화된다면 투자 옵션은 더 넓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LG에너지솔루션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에서 ESS로 사업 무게중심을 옮기고, 정부 규제 완화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하며, AI 안전기술로 차별화를 꾀하는 모습이다. 앞으로 배터리 산업이 어떻게 재편될지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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