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회사의 신약 개발을 이끌어왔던 핵심 연구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회사를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직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은퇴하는 사람도 있고, 건강 문제로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사유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이들이 회사의 R&D를 책임지던 핵심 리더였다는 점이다.
유한양행의 충격적인 상황
유한양행의 경우가 가장 눈에 띈다. 올해 들어 오세웅 중앙연구소장과 윤태진 R&BD본부 전략실장이 이미 퇴사했고, 임효영 임상의학본부장과 이영미 R&BD본부장도 연말에 회사를 떠날 예정이다. 무려 4명의 핵심 보직자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셈이다.
김열홍 R&D총괄 사장 밑에서 중앙연구소, R&BD본부, 임상의학본부 등 주요 조직을 이끌던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비우게 되니 내부에서도 긴장감이 감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아에스티와 JW중외제약도 마찬가지
동아에스티는 10월에 박재홍 R&D 총괄사장이 퇴사한 이후 연쇄적으로 핵심 인력들이 회사를 떠났다. 해외사업부를 담당하던 류경영 상무, 바이오공정연구 분야의 이건일 연구위원 등이 잇달아 퇴사했다. 지금은 성무제 에스티팜 사장이 동아쏘시오그룹 전체의 R&D를 총괄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JW중외제약도 박찬희 최고기술책임자가 사임한 뒤 조직 재정비에 들어갔다. 유전자치료제 전문가인 김선영 전 헬릭스미스 창업주를 R&BD 고문으로 영입하면서 기술 전략을 새롭게 짜고 있다.
바이오테크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제약회사만 이런 건 아니다. 바이오테크 기업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에이비엘바이오에서는 창립 멤버이자 연구개발본부장이었던 유원규 부사장이 최근 건강 문제로 회사를 떠났다. 유 전 부사장은 에이비엘바이오의 핵심 기술인 그랩바디 이중항체 플랫폼 개발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올해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일라이 릴리와의 기술이전 계약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다.
회사는 각 분야별로 책임 리더가 있어서 단기적인 공백은 크지 않다는 입장이지만, 상징적인 인물이 빠져나간 건 사실이다. 앞으로도 추가 기술이전이 기대되는 시점이라 그의 부재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루닛에서도 루닛 스코프 R&D를 총괄하던 옥찬영 최고의학책임자가 지난 9월 퇴사했다. 옥 상무는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출신으로 2019년 루닛에 합류한 뒤 면역항암제 반응 예측 플랫폼인 루닛 스코프 개발을 이끌어왔다. 아스트라제네카, 로슈 같은 글로벌 제약사와의 공동 연구도 그가 주도했다.
다만 루닛은 함께 연구를 진행해온 안창호 상무를 신임 최고의학책임자로 선임하면서 빠르게 대응했다. 이제 스코프가 연구 단계에서 상업화 단계로 넘어가는 시점이라 안 상무를 중심으로 사업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업계에서는 이를 내부 구조 재정비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인력 이동으로 보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전통 제약사들이 합성신약 중심에서 바이오의약품 중심으로 개발 전략을 전환하면서 인력 구성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많은 제약사들이 바이오 분야로 방향을 틀면서 기존 연구 인력과의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바이오의약품 개발 경험이 풍부한 새로운 인재를 찾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기존 R&D 리더들의 후임은 바이오 분야 경험이 풍부한 인물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다”며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공백이 길어지는 게 문제다
사실 사람이 회사를 떠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후임을 빨리 선임하지 못하면서 공백이 길어진다는 점이다.
신약 개발은 의사결정의 연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파이프라인을 밀고 나갈 것인지, 임상시험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업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등 모든 게 이어져야 한다. R&D 리더가 바뀌면 전략이 바뀔 수 있고, 그러면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에이비엘바이오처럼 글로벌 기술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회사의 경우, 핵심 리더의 부재가 협상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상대방 입장에서도 누구와 대화를 나눠야 할지 불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제약바이오 업계의 숙제
결국 이 문제는 단순히 사람 한두 명이 회사를 떠나는 수준이 아니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전체의 경쟁력과 연결돼 있다.
우수한 인재들이 계속 이 업계에 남아서 신약 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게 안 되면 아무리 좋은 기술과 파이프라인이 있어도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없다.
각 회사들이 어떻게 조직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리더를 영입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연구 개발의 연속성을 어떻게 유지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건 단순히 한두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산업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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