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를 믿고 기다려주신 주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박순철 삼성전자 CFO가 30일 실적 발표에서 꺼낸 첫마디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 삼성전자 주주들도, 경영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삼성전자가 3분기에 영업이익 12조원을 넘겼다. 반도체 부문만 봐도 영업이익이 7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1.3%나 증가했다. 메모리 부문은 아예 분기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드디어 삼성전자가 제대로 된 실적을 내놓은 셈이다.
HBM3E로 판을 바꾸다
실적 반등의 핵심은 역시 HBM이다. 그동안 SK하이닉스에 밀렸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삼성전자도 이제 본격적으로 HBM 시장에 뛰어들었다. 김재준 메모리 전략마케팅실장의 말을 들어보면 상황이 확 와닿는다.
“3분기 HBM 판매는 소량 레거시 제품 빼고는 전량 HBM3E로 전환됐습니다. HBM 비트 판매량은 전분기 대비 80% 이상 늘었고요.”
80% 증가라니, 엄청난 수치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HBM3E 12단을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도 사실상 인정했다. “모든 고객사를 대상으로 HBM3E 양산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HBM 비중이 늘어나면서 D램 평균 판매가격도 전분기 대비 10%대 중반 올랐다.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은 HBM 수요가 공급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만들기만 하면 다 팔린다는 얘기다.
이미 준비된 HBM4
삼성전자의 진짜 반전 카드는 따로 있다. 바로 HBM4다. 삼성전자는 이미 HBM4 개발을 완료했고, 모든 고객사에 샘플까지 보냈다. 김재준 부사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11Gbps 이상 성능을 저전력으로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개발 단계부터 고객사의 고성능 요구를 감안해서 만들었거든요.”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삼성전자 HBM4가 업계 유일하게 최선단 1c D램 공정과 4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한 발 앞서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내년 계획도 이미 확정됐다. 삼성전자는 내년 HBM 생산량을 올해보다 대폭 늘릴 예정이고, 해당 물량에 대한 고객 수요도 벌써 확보해뒀다. 심지어 추가 증산까지 검토 중이라고 한다. 주문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는 뜻이다.
AI가 만든 슈퍼사이클
이번 실적은 단순히 반도체 시장이 좋아져서 나온 게 아니다. AI 중심의 새로운 슈퍼사이클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데이터센터 투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HBM은 물론이고 일반 D램, 낸드까지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김재준 부사장의 설명을 들어보면 시장 상황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AI 관련 제품 중심의 판매 확대가 실적을 이끌었다”고 한다. 수요는 폭증하는데 공급은 제한적이니 가격도 오르고 실적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낸드 시장도 마찬가지다. HDD를 SSD로 교체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고용량 SSD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김 부사장은 “업계 재고가 예상보다 빨리 바닥에 도달할 것”이라며 “설비투자와 최대 생산을 고려해도 공급 가능량이 고객 수요에 크게 못 미친다”고 말했다.
파운드리도 회복 중
삼성전자 파운드리 부문도 서서히 회복하고 있다. 상반기에는 일회성 비용과 낮은 가동률 때문에 적자가 컸지만, 3분기에는 선단 공정 중심으로 가동률이 개선되면서 적자가 크게 줄었다. 3분기 파운드리 수주 규모는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4분기부터는 2나노 1세대 양산이 본격화되고, 메모리와 연계된 제품 판매도 늘어날 예정이다. 내년에는 미국 테일러팹도 가동된다. TSMC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한 삼성전자의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는 셈이다.
주주들에게 보답하는 길
삼성전자는 주주환원 정책도 차근차근 이행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10조원 자사주 매입을 전량 완료했고, 임직원 보상용을 제외한 자사주는 가급적 빨리 소각할 계획이다.
올해 시설투자는 총 47조4000억원 규모다. 반도체 부문에만 40조9000억원을 쏟아붓는다. 미래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박순철 CFO는 실적 발표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경영진은 지난 분기까지 당사 실적에 대해 시장과 주주 여러분께서 큰 우려가 있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3분기는 실적 반등을 통해 기대에 조금이나마 부응할 수 있게 됐고요. 앞으로도 사업 경쟁력 제고를 통해 기대를 충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다려준 주주들에게 보답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이미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다. HBM3E로 시작해서 HBM4로 이어지는 삼성전자의 행보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해질 것 같다.
👉 워런 버핏·찰리 멍거 “기업 분석 제대로 하려면 OOOO로 하라!”
👉 독일 경제 3년째 추락,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