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평균 수명이 83세를 넘어섰다고 한다. 60세에 은퇴하면 최소 2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퇴직금 받고 모아둔 돈 합쳐서 5억 정도 있다면, 이 돈으로 어떻게 25년을 버틸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은퇴 자산을 그냥 은행에 넣어두거나, 아니면 반대로 주식이나 코인 같은 데 몰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둘 다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신한 프리미어 PWM에서 일하는 김수경 팀장은 은퇴 후 자산은 ‘키우는 돈’이 아니라 ‘지키면서 나눠 쓰는 돈’이라고 강조한다. 중요한 건 수익률 경쟁이 아니라 얼마나 오래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제안하는 게 바로 4통장 전략이다.
생활비 통장에는 2억원 넣어두기
전체 자산의 40% 정도를 생활비 통장에 배분하는 게 좋다. 5억이면 2억원 정도다. 이 통장은 매달 월급처럼 생활비를 빼 쓰는 계좌라고 보면 된다.
여기에 넣는 돈은 최대한 안전하게 굴려야 한다. 국공채나 채권형 펀드처럼 원금 손실 위험이 거의 없는 상품이 좋다. 은행 예금보다는 조금 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으면서도 안정적인 곳에 두는 것이다.
달러로 된 채권이나 달러 머니마켓펀드에 일부를 넣어두면 환율이 오를 때 방어 효과도 있다. 원화 가치가 떨어져도 달러 자산은 그만큼 가치가 올라가니까 말이다.
배당과 임대소득으로 월세 받듯이
두 번째 통장에는 전체의 35%, 그러니까 1억 7500만원 정도를 배분한다. 이 통장의 목적은 꾸준한 수익을 만드는 것이다. 마치 월세를 받듯이 정기적으로 돈이 들어오게 만드는 통장이다.
생활비 통장보다는 조금 더 공격적으로 투자한다. 배당을 주는 주식이나 배당주 ETF에 투자하면 분기마다 또는 매년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 국내 주식만 담을 필요는 없고, 해외 배당주도 섞어서 투자하면 좋다.
리츠라는 것도 있다. 부동산 투자회사인데, 여러 사람이 돈을 모아서 건물을 사고 임대를 주면 그 수익을 나눠 받는 구조다. 실제로 건물을 살 돈은 없지만 임대수익을 받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요즘 부동산 가격이 워낙 비싸니까 리츠로 간접투자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연 5% 정도만 수익이 나도 1억 7500만원에서 연간 875만원 정도가 들어온다. 한 달로 따지면 70만원 정도 되니까 생활비에 꽤 보탬이 된다.
10년 후를 위한 미래 대비 통장
세 번째 통장에는 15%, 그러니까 7500만원을 넣어둔다. 이 돈은 당장 쓸 돈이 아니라 10년, 20년 후를 대비하는 돈이다.
물가는 계속 오른다. 지금의 100만원과 10년 후의 100만원은 가치가 다르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 미국의 대표 기업들에 투자하는 글로벌 ETF나 헬스케어, 친환경 같은 미래 산업 ETF가 좋은 선택이다.
이 통장은 단기 등락에 신경 쓰지 않고 길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이 변하고 물가가 올라도 자산 가치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게 목적이다.
비상금은 따로 5000만원
네 번째 통장은 비상금 통장이다. 전체의 10%인 5000만원 정도를 넣어둔다. 갑자기 병원에 가야 하거나, 자녀에게 급하게 돈을 줘야 하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바로 꺼낼 수 있는 돈이다.
이 돈은 언제든 인출할 수 있어야 하니까 CMA나 단기 예금처럼 유동성이 좋은 곳에 넣어둔다. CMA는 하루만 맡겨도 이자가 붙고 입출금이 자유로워서 비상금 관리하기 좋다.
균형이 제일 중요하다
김수경 팀장은 균형을 강조한다. 5억을 다 은행에 넣어두면 매년 물가에 갉아먹힌다. 지금 물가 상승률이 3%라고 치면, 10년 후 5억의 실제 가치는 3억 7천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반대로 주식이나 코인 같은 고위험 자산에 다 넣으면 시장이 안 좋을 때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안정적인 자산으로 생활비를 확보하고, 배당과 ETF로 현금 흐름을 만들고, 일부는 장기 성장에 투자하는 균형 잡힌 전략이 필요하다. 4통장 전략은 이런 균형을 맞추기 위한 방법이다.
59세 은퇴 예정자의 실제 사례
내년에 은퇴하는 59세 A씨를 예로 들어보자. 퇴직금으로 3억원을 받고 이미 가지고 있던 현금 2억원을 합치면 총 5억원이다. 남성 평균 수명이 80.6세니까 A씨는 최소 21년을 이 돈으로 버텨야 한다.
A씨가 4통장 전략을 쓴다면 이렇게 된다. 생활비 통장에 2억원을 넣어두고 한 달에 200만원씩 쓴다고 치면 약 8년은 버틸 수 있다. 그 사이에 배당 통장에서 연간 875만원 정도가 계속 들어온다. 생활비 통장이 바닥나도 배당 수익으로 계속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
미래 대비 통장의 7500만원은 장기적으로 성장하면서 나중에 더 큰 도움이 된다. 비상금 5000만원은 그대로 두고 정말 급할 때만 쓴다.
자산 배분 비율 정리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생활비 통장 40%는 국공채, 채권형 펀드, 달러 자산으로 구성한다. 안정성이 최우선이다.
배당 임대소득 통장 35%는 배당주, 배당 ETF, 리츠로 꾸린다. 정기적인 현금 흐름이 목표다.
미래 대비 통장 15%는 글로벌 ETF, 성장 산업 ETF로 채운다. 장기 자산 가치 보존이 핵심이다.
비상금 통장 10%는 CMA, 단기 예금으로 관리한다. 언제든 쓸 수 있어야 한다.
피해야 할 실수들
전액을 은행 예금에만 넣어두는 건 좋지 않다. 이자는 받지만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해서 실질적으로는 손해를 보게 된다.
반대로 주식이나 코인 같은 고위험 자산에 몰빵하는 것도 위험하다. 은퇴 후에는 원금을 잃으면 다시 벌기 어렵다. 젊을 때처럼 공격적으로 투자하면 안 된다.
통장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쓰다 보면 계획 없이 돈이 나가서 예상보다 빨리 바닥날 수 있다. 목적별로 통장을 나눠두는 게 중요한 이유다.
1년에 한두 번은 점검하기
시장 상황도 바뀌고 개인 상황도 변한다.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각 통장의 비율을 점검하고 조정하는 게 좋다. 주식 시장이 많이 올라서 배당 통장 비중이 너무 커졌다면 일부를 생활비 통장이나 미래 대비 통장으로 옮기는 식이다.
세금도 생각해야 한다. 배당소득세, 양도소득세가 있으니까 ISA나 연금저축 같은 세제 혜택이 있는 상품도 같이 활용하면 좋다.
금액이 5억이 안 되어도 괜찮다
꼭 5억이 있어야 이 전략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3억이 있으면 3억에 맞춰서 비율대로 나누면 된다. 생활비 통장 40%면 1억 2000만원, 배당 통장 35%면 1억 500만원, 미래 대비 통장 15%면 4500만원, 비상금 10%면 3000만원이다.
중요한 건 금액이 아니라 비율과 균형이다. 자신이 가진 자산에 맞춰서 똑같은 원칙을 적용하면 된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김수경 팀장의 말처럼 은퇴 후에도 안정과 여유를 함께 누릴 수 있다. 4통장 전략은 단순히 돈을 나눠두는 게 아니라 각 통장에 명확한 역할을 주는 것이다.
생활비는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배당으로 추가 수익을 만들고, 장기 성장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비상금으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응한다. 이렇게 하면 은퇴가 두렵지 않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일에서 벗어나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돈 걱정 없이 그 시간을 즐기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4통장 전략으로 똑똑하게 자산을 배분하고 관리하면 노후에도 경제적 안정과 삶의 여유를 함께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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