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이 미국 루이지애나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제철소를 짓고 있다. 투자 금액만 58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8조 5천억원이다. 지난 12월 초 킨텍스에서 열린 세계 수소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이 공장의 구체적인 모습이 공개됐는데, 생각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계획이었다.
미시시피강에서 시작되는 철강 생산
공장 설계를 보면 폭 800미터나 되는 미시시피강을 통해 배로 철광석 펠렛을 실어온다. 이 원료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100미터 높이의 직접 환원 제철 설비로 올라가는 방식이다. 여기서 천연가스로 철을 환원시켜서 직접환원철을 만들고, 이걸 철 스크랩과 섞어서 전기로에 넣으면 쇳물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쇳물을 굳혀서 중간재로 만들고, 열연과 냉연 공정을 거쳐 최종 제품이 나온다. 완성된 제품은 공장 내부까지 연결된 철도나 도로로 육상 운송을 하거나, 다시 배에 실어서 고객사에 보낸다. 원료가 들어오고 제품이 나가는 모든 과정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구조다.
루이지애나주 남부 668만 제곱미터 부지에 170만 제곱미터 규모로 지어지는 이 공장은 연간 270만 톤의 철강재를 생산할 예정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 제품의 70%가 자동차용 강판이라는 점이다.
미국 자동차 강판 시장을 노린다
미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시장이다. 연간 900만 톤의 자동차용 강판이 소비되고, 앞으로는 1000만 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 철강 산업이 좀 낙후되어 있다는 거다. 완성차 업체들이 고품질 자동차용 강판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대제철은 바로 이 틈새를 공략하려는 것이다. 루이지애나 공장에서 600킬로미터 떨어진 현대자동차 앨라배마 공장과 1100킬로미터 떨어진 메타플랜트에 우선 공급하고, 나아가 포드나 GM 같은 현지 완성차 업체까지 고객으로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트럼프 행정부가 매긴 50% 철강 관세 때문에 더 절실해진 측면도 있다. 한국에서 만들어서 수출하면 관세 폭탄을 맞지만,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면 그런 문제가 없으니까. 관세 장벽을 우회하면서 동시에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일석이조 전략인 셈이다.
뉴코어보다 좋은 강판을 만들려면
현대제철이 처음부터 자동차용 강판 생산에 초점을 맞춰서 설비를 설계했다는 게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 전기로 제철소에는 VOD라는 진공탈탄공정이 들어가는데, 여기서는 RH라는 진공탈가스공정 설비를 갖췄다. VOD는 쇳물에서 탄소를 주로 제거하는 방식인데, RH는 비용이 더 들긴 하지만 수소나 질소 같은 가스 함량까지 조절할 수 있어서 강철의 순도를 훨씬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일반 전기로 제철소와 달리 직접환원철을 주 원료로 쓴다는 것도 중요한 차이점이다. 보통 전기로는 철 스크랩을 주로 쓰는데, 스크랩에는 구리 같은 불순물이 섞여 있어서 나중에 제거하기가 어렵다. 불순물이 많으면 고품질 자동차 강판을 만들 수 없으니, 직접환원철 비중을 높여서 순도를 올리겠다는 전략이다.
이렇게 하면 전기로로도 고로 제품에 버금가는 품질을 낼 수 있고, 현지 철강 기업인 뉴코어와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게 현대제철의 판단이다. 게다가 쇳물부터 제품까지 한 곳에서 만드는 일관제철소의 장점을 살려서 고객사가 원하는 다양한 사양의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
탄소 배출을 확 줄인다
환경 문제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 같은 환경 규제가 점점 강화되면서, 완성차 업체들도 저탄소 강판을 원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직접환원 제철 공정을 통해 석탄을 쓰는 기존 고로 공정 대비 탄소 배출량을 최대 70%나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숫자로 보면 더 명확하다. 현대제철이 지난해 국내에서 조강 1톤을 생산할 때 평균 1.5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그런데 루이지애나 제철소는 조강 1톤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0.13톤까지 낮출 수 있다. 연간으로 따지면 33만 톤 수준만 배출한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현대제철 최초로 탄소포집저장 시스템까지 도입한다. 배출되는 탄소의 약 70%를 포집해서 처리하는 시스템인데, 운이 좋게도 인근에 화학 기업 단지의 대규모 탄소 저장 시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포집한 탄소를 멀리까지 옮기려면 비용이 많이 드는데, 가까운 곳에 저장 시설이 있으니 경제성도 확보할 수 있다.
수소로 철을 만드는 미래까지
현대제철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려고 한다. 직접환원 제철 공정에서 지금은 천연가스를 환원제로 쓰는데, 나중에는 수소 비중을 높여서 탄소 배출이 거의 없는 니어제로 제철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포스코와도 협업을 진행한다. 포스코는 이미 30만 톤급 수소환원 파일럿 공정 설계를 완료했고, 루이지애나 제철소 건설에 1조원 이상을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 단독 프로젝트라기보다는 한국 철강 산업 전체가 함께 미래 기술을 검증하는 장이 될 수도 있겠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
현대제철 관계자는 “미국 루이지애나 제철소는 세계 최초로 지어지는 자동차용 강판 맞춤 전기로 일관 제철소”라고 강조했다. 고로 공정에 비해 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이면서도 품질은 뒤지지 않는 자동차용 강판을 공급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는 거다. 실제로 지금도 수요 기업들의 문의가 많은 상황이라고 한다.
668만 제곱미터 부지에 170만 제곱미터 규모로 짓는 공장, 연간 270만 톤 생산 능력, 그중 70%가 자동차용 강판, 탄소 배출 87% 감축, 수소환원 제철 기술 적용 가능성까지. 숫자로만 봐도 상당히 야심찬 프로젝트다.
미국 시장은 관세 장벽이 높지만 그만큼 규모도 크고 성장 가능성도 있다. 현지 철강 산업이 낙후되어 있어서 고품질 자동차 강판 수요는 있는데 공급은 부족한 상황. 게다가 환경 규제는 점점 강화되고 있으니, 저탄소 고품질 강판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
2020년대 후반 가동을 목표로 건설이 진행 중이라고 하니, 몇 년 후면 실제로 이 공장에서 생산된 강판이 현대차나 기아차는 물론 포드, GM의 차체에도 쓰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8조원짜리 도박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적 투자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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