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기업들이 해외 자본에 대거 넘어가고 있다. 뉴스에서 자주 들리는 ‘인바운드 M&A’라는 말이 바로 이거다. 외국 회사나 사모펀드가 한국 기업을 사들이는 걸 말하는데, 작년 들어서 그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했다.
한국경제신문 자료를 보면 2025년 1월부터 9월까지 해외 자본이 한국 기업 인수에 쓴 돈이 11조 4천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2024년 같은 기간에 2조 3천억원 정도였으니까 5배나 늘어난 셈이다. 거래 건수도 23건으로 2024년 전체 건수를 벌써 따라잡았다.
환율 때문에 한국 기업이 ‘세일’ 중?
가장 큰 이유는 환율이다. 작년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나들었는데, 2021년 초랑 비교하면 30% 가까이 올랐다. 반대로 말하면 원화 가치가 20% 넘게 떨어진 거다. 달러를 가진 외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한국 기업을 2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뜻이다.
투자은행 관계자들은 “최근 고환율은 해외 투자자가 바겐세일 가격으로 한국 기업을 사들일 기회”라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실제로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이라는 게 있는데, 2025년 10월 기준으로 89 정도 된다. 미국은 108, 유로존은 104인데 한국은 89다. 쉽게 말해 우리 돈의 실질 구매력이 그만큼 낮다는 의미다.
프랑스 회사인 에어리퀴드가 DIG에어가스를 4조 8천억원에 샀고, 스웨덴 사모펀드 EQT파트너스는 더존비즈온을 1조 3천억원에 인수했다. SK텔레콤도 울산에 짓고 있는 AI 데이터센터 지분 49%를 외국 자본에 팔려고 준비했다. KKR, 맥쿼리인프라, 브룩필드 같은 글로벌 대형 투자사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국내 기업들은 왜 사지 않았나?
예전에는 SK, 롯데, GS 같은 대기업들이 다른 회사를 사들이는 큰손이었다. 그런데 작년에는 반대로 자기들 자산을 팔고 있었다. 경기가 안 좋으니까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기보다는 핵심이 아닌 자산을 팔아서 빚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국내 사모펀드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대주는 투자자들이 겹치다 보니 서로 이해관계가 복잡해서 좋은 매물이 나와도 해외 펀드한테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외국 자본이 한국 시장을 휩쓸게 된 거다.
2025년에 1조원 넘는 대형 거래가 9건 있었는데 그중 4건이 해외 자본의 한국 기업 인수였다. 전체 M&A 시장에서 인바운드 비중이 2024년에는 5.3%였는데 2025년에는 23.1%로 뛰었다. 4배 넘게 증가한 셈이다.
외국 투자자들도 조심스럽긴 마찬가지
재미있는 건 외국 투자자들도 불안해한다는 점이다. 환율이 1450원인데, 나중에 1500원, 1600원 될 수도 있지 않냐는 거다. 그래서 작년 한국 기업에 투자하면서 원화가 아니라 달러 기준으로 수익률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 글로벌 펀드가 늘고 있었다고 한다.
한 외국계 펀드 대표는 “2021년 전에 한국에 투자했다가 환율 오르면서 손해 본 경험이 있어서 본사에서 안전장치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지금 환율도 충분히 높은데 더 오를 수 있다고 보는 거다.
다른 외국계 펀드 관계자는 더 직설적이었다. “싼 맛에 사서 빨리 되파는 거래 말고는 중장기적으로 한국에 투자하기 조심스럽다는 게 글로벌 시장 분위기”라고 했다. 한국 경제 전망에 대한 신뢰가 그리 높지 않다는 뜻이다.
일본이 겪고 있는 일이 한국에도?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이런 상황을 겪고 있다. 엔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서 일본 기업들이 외국 자본의 표적이 됐다. 일본의 실질실효환율은 70 정도인데 50년 만에 최저치라고 한다.
2023년에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가 일본 기업에 투자한 돈이 4조 8천억엔으로 역대 최고였다. 도쿄증시 전체 시가총액의 0.5%를 이런 펀드들이 쥐고 있다. 일본에서는 “일본 기업이 해외 자본의 먹잇감이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국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닐까? 환율이 계속 높게 유지되고 경기 회복이 더디면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경영권 방어 수단은 거의 없다
문제는 한국 기업들이 적대적 인수에 맞서 경영권을 지킬 방법이 별로 없다는 거다. 상법이 개정되면서 포이즌필 같은 방어 수단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포이즌필이라는 건 적대적 인수자가 나타나면 기존 주주들한테 싼 값에 주식을 추가로 발행해서 인수자의 지분을 희석시키는 방법인데, 한국에서는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서 쓰기 힘들다.
게다가 국회에서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까지 논의되고 있다. 이게 통과되면 기업들이 쓸 수 있는 방어 수단이 거의 사라진다고 한다.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3차 개정안까지 통과되면 국내 기업은 해외 자본의 공격에 대응할 수단이 없어진다”고 경고했다.
이게 나쁜 일이기만 할까?
물론 해외 자본이 한국 기업에 투자하는 게 나쁜 일만은 아니다. 그만큼 한국 기업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외국인 직접투자가 늘어나면 일자리도 생기고 기술 이전도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단기 수익만 노리고 들어왔다가 빠르게 빠져나가는 투기성 자본이 문제다. 회사를 인수해서 구조조정으로 단기 수익을 뽑아내고 되파는 식의 투자가 늘어나면 한국 경제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2025년 인바운드 M&A 총액은 13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4분기에 더존비즈온 거래가 포함되면서 2023년 기록인 12조 7천억원을 확실히 넘긴 것이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5조에서 7조원 수준이었으니까 정말 급증한 거다.
이런 흐름이 계속될지는 환율과 경기가 어떻게 되느냐에 달려 있다. 원화 가치가 회복되고 국내 경기가 좋아지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지만, 당분간은 외국 자본의 한국 기업 쇼핑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 전략을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이고, 정부도 외국인 투자 유치와 경제 주권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쉽지 않은 문제지만 분명히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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