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산 주식 1위와 2위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그런데 3위가 좀 의외다. 바로 한국전력이다.
한국거래소 자료를 보면 2025년 1월부터 10월 중순까지 외국인들이 한국전력 주식을 1조 2천억원어치나 순매수했다. 삼성전자가 6조 4천억원, SK하이닉스가 2조 6천억원이니 규모 자체는 작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전력의 시가총액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4~8% 수준밖에 안 된다는 걸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회사 규모에 비해 엄청난 돈이 몰린 셈이다.
만년 적자 기업이었는데
한국전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적자. 그것도 만년 적자다. 이유는 간단하다. 발전회사들한테는 비싸게 전기를 사고, 국민들한테는 싸게 판다. 독점 공기업이라 전기요금을 마음대로 올릴 수도 없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연속 영업적자를 냈고, 특히 2022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원가의 64%밖에 회수하지 못했다.
그런데 작년에 상황이 바뀌었다. 영업이익 8조원을 넘기며 흑자로 돌아섰다. 올해는 증권사들이 14조원의 영업이익을 예상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올해 한국전력의 원가 회수율이 115%까지 올라갈 거라고 봤다.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수치다.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도 있고
이재명 대통령이 전기요금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올해 4분기 연료비 조정 단가는 동결됐지만, 다른 요금 항목들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국제유가나 천연가스 같은 원자재 가격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서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되고 있다.
게다가 올해 초에 4년 만에 배당도 재개했다. 미국 원전 시장에 진출하려는 계획도 있어서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도 생겼다. 그런데도 한국전력의 PBR은 0.51 수준이다. 쉽게 말해 회사 자산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절반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외국인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저평가된 주식을 발견한 셈이다.
외국인 지분율이 늘면 주가도 오른다
재미있는 건 한국전력의 주가와 외국인 지분율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둘 사이의 상관계수가 0.83이다. 거의 같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올해 초만 해도 외국인 지분율이 16%였는데 10월 중순에는 22%까지 올라갔다. 같은 기간 한국전력 주가는 96% 뛰었다. 메리츠증권의 문경원 연구원은 외국인 비중이 2018년 이전에는 30~35% 수준이었다는 점을 들어 아직 더 오를 여지가 있다고 봤다. 분기 실적이 좋게 나올수록 외국인 지분율은 더 높아질 거라는 분석이다.
국내 증권사들이 제시한 한국전력의 평균 목표주가는 4만 5,583원이다. 현재 주가가 4만 150원이니 아직 갈 길이 남았다는 계산이다.
그래도 조심할 부분은 있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최근 공매도 잔고가 급증했다. 10월 1일에 29억원이었던 게 10일 만에 64억원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주가가 떨어질 거라고 보는 투자자들이 늘어났다는 신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재무 건전성이다. 2021년 이후 쌓인 적자가 30조원이다. 신한투자증권의 최규헌 연구원은 재무 건전성 확보가 먼저라고 강조한다. 전기요금 인상이 실제로 이뤄지고 원전 사업도 제대로 진행돼야 중장기적으로 주가가 계속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단기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게 낫다고 조언한다.
한국전력은 분명 변화하고 있다. 적자 기업에서 흑자 기업으로, 외면받던 주식에서 외국인들이 주목하는 주식으로. 하지만 30조원의 부채와 정치적으로 민감한 전기요금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투자를 고려한다면 분기 실적과 정책 변화를 꾸준히 지켜보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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