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반도체 업계를 보면 정말 숨가쁘게 돌아간다. AI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반도체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고, 각국 정부들은 이제 반도체를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전략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삼성이나 TSMC 같은 글로벌 기업들을 자국으로 끌어오는 게 목표였다면, 지금은 자국 기업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대표적인데, EU 집행위원회가 반도체법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 이른바 칩스법 2.0이라고 부르는데, 유럽 자체 기업들의 연구개발을 대폭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미국은 더 과감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인텔의 최대주주가 됐다. 공기업화 논란이 있긴 하지만, 전략산업이라면 정부가 직접 지분을 사서라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로 반도체 자립률 70%를 목표로 달려왔고, 일본도 2030년까지 반도체와 AI 분야에 94조 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했다.
왜 갑자기 이렇게 자국 기업 키우기에 열을 올릴까. 미중 무역전쟁과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뼈저리게 느낀 게 있다. 반도체 생산이 특정 국가에 집중되면 정말 위험하다는 것.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반도체 경쟁에서 뒤처지면 AI든 자율주행이든 로봇이든 첨단산업에서 아예 게임이 안 된다는 현실이다.
엔비디아가 2조 9천억 원을 쓴 이유
엔비디아가 시놉시스라는 회사에 2조 9천억 원을 투자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놉시스는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1위 기업이다. 엔비디아는 이번 투자로 자사의 GPU 기반 시뮬레이션 기술을 시놉시스 소프트웨어에 접목시킬 계획이다. 쿠다-X나 AI-피직스 같은 디지털트윈 기술로 반도체 설계를 더 정확하게 만들겠다는 거다.
그런데 이게 단순한 기술 투자만은 아니다. 최근 구글을 비롯한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 GPU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자체 AI 칩을 만들어서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위기감이 클 수밖에 없고, 이번 투자는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더 단단히 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오픈AI도 긴장하고 있다. 샘 올트먼 CEO가 전 직원에게 코드레드를 발령했다. 구글의 제미나이3가 빠르게 추격해오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것 같다. 올트먼은 당분간 광고나 새로운 기능 추가는 미루고 챗GPT의 대화 경험 개선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미나이3보다 성능이 좋은 새 추론 모델을 다음 주쯤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AI 업계 1위였던 오픈AI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는 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의미다. 구글이 정말 무섭게 추격하고 있는 모양이다.
일본 금리 인상 신호에 시장이 흔들린다
일본이 금리를 올릴 것 같다는 신호를 보내자 글로벌 금융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우에다 일본은행 총재가 통화정책을 조정하겠다고 발언했는데, 시장은 이를 올해 1월 이후 멈췄던 금리 인상을 이달 재개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뉴욕 증시 3대 지수가 일제히 떨어졌고,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7.2bp,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는 6.2bp 올랐다. 채권시장도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문제는 엔캐리 트레이드다. 이게 뭐냐면, 금리가 낮은 엔화로 돈을 빌려서 금리가 높은 나라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일본이 금리를 올리면 엔화로 돈을 빌린 투자자들이 환 손실을 피하려고 대규모로 상환에 나선다. 도이체방크 추산으로는 전 세계 엔캐리 트레이드 규모가 최대 2경 9천조 원이라고 한다. 엄청난 규모다.
지난해 7월에 일본은행이 금리를 0.10%에서 0.25%로 올렸을 때도 글로벌 시장이 요동쳤다. 블랙먼데이라고 불렸던 그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증시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최근 우에다 총재와 만나서 엔화 가치 상승이 필요하다는 일본은행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다는 소식도 12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반도체가 모든 걸 좌우하는 시대
결국 지금은 반도체를 누가 더 잘 만들고,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산업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직결된 전략 자산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모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다. 우리나라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긴 하지만, 시스템 반도체나 반도체 장비 쪽은 아직 부족한 게 사실이다.
각국이 이렇게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 우리도 안주할 수 없다. 지금의 위치를 지키고 더 나아가려면 정부 차원의 전략적 투자와 지원이 절실하다. 반도체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더 격렬해질 게 분명하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반도체의 가치는 계속 올라갈 것이다. 엔비디아와 구글의 경쟁, 오픈AI의 위기감, 일본의 금리 정책까지, 모든 게 연결돼 있다. 반도체를 둘러싼 이 거대한 게임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 앞으로의 전개가 주목된다.
👉 “엔캐리 트레이드가 대체 뭐길래? 이젠 정말 끝내자” 개념 완벽 정리
👉 요즘 환율 1470원 넘는데, 방산업계는 웃고 군은 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