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에 상장된 신약 개발 기업 유틸렉스가 결국 경영권을 매각했다. 12월 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창업자인 권병세 대표가 청안인베스트먼트에 404만 주를 넘기기로 했다. 주당 2,474원, 총 100억 원 규모다. 잔금은 내년 1월 15일에 치를 예정이다.
유틸렉스는 한때 시가총액이 1조 원 가까이 올라갔던 회사다. 2018년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에 입성했을 때만 해도 투자자들의 기대가 컸다. CAR-T 세포치료제와 면역항암제를 개발하는 회사였고, 당시 바이오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분야를 다루고 있었다. 상장하고 3개월쯤 지난 2019년 3월에는 시총이 9,915억 원까지 치솟았다.
신약 개발은 지연되고 재무구조는 악화되고
문제는 신약 개발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는 점이다. 2019년에는 서류에서 오타가 발견되면서 임상시험이 10개월이나 미뤄지기도 했다. 상장 이후 지금까지 기술이전 계약을 단 한 건도 따내지 못했다. 매출은 발생하지 않는데 연구개발비는 계속 들어가니 재무상태가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영업이익은 한 번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고, 부채는 계속 늘어났다.
상장을 유지하려면 연매출이 최소 30억 원은 되어야 한다. 유틸렉스는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 자회사였던 IT솔루션 회사 아이앤시스템을 흡수합병했다. 지난 3분기 기준으로 보면 유틸렉스 매출 790억 원 중 절반이 넘는 452억 원이 IT 사업에서 나왔다. 바이오 사업 매출은 겨우 2억 원 수준이다. 신약 개발 회사로 상장했는데 실제로는 IT 회사가 되어버린 셈이다.
창업자는 판틸로고스로 다시 시작
권병세 대표는 유틸렉스를 팔고 나서도 신약 개발을 계속할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매각 대금 일부를 활용해서 자회사 판틸로고스의 지분을 전부 사들일 예정이라고 한다. 판틸로고스는 2020년에 유틸렉스에서 분사한 회사다. 2022년에는 유틸렉스의 주력 파이프라인 중 하나였던 EU505라는 이중항체 치료제를 기술이전받았다.
EU505는 4-1BB와 PD-1이라는 두 가지 표적을 동시에 공격하는 항암제다.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면서 동시에 암세포가 면역세포의 공격을 막는 것도 차단하는 방식이다. 현재 판틸로고스 지분은 유틸렉스가 70%, 권 대표가 30% 정도 갖고 있는데, 권 대표가 유틸렉스 지분까지 전부 사들이면 판틸로고스는 완전히 그의 회사가 된다. 결국 비상장사에서 다시 신약 개발을 이어가겠다는 얘기다.
권 대표는 올해 4월에도 특수관계인들과 함께 판틸로고스 지분을 추가로 매입한 적이 있다. 그때도 유틸렉스 주식을 이용해서 돈을 마련했다.
기술특례상장의 그림자
자본시장 쪽 사람들은 이번 유틸렉스 매각을 곱게 보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유틸렉스가 매물로 나왔을 때부터 우회상장용 셸로 쓸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결국 기술특례상장으로 소액주주들만 손해를 보고, 상장사 껍데기만 남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틸렉스 주가는 고점 대비 90% 이상 떨어졌다. 2019년 시총이 거의 1조 원이었는데, 지금 주가는 1,177원 수준이다. 경영권 매각 가격인 주당 2,474원과 비교해도 현재 주가는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믿고 투자했던 개인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뼈아픈 결과다.
유틸렉스는 앞으로 바이오 사업을 분리하고 우회상장용 회사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신약 개발의 꿈을 안고 상장했던 회사가 9년 만에 이런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바이오 기업에 투자할 때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그 기술이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회사의 재무구조는 건전한지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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