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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이 매년 쪼그라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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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 요약

  • 시중에 유통되는 돈 대부분은 중앙은행이 찍어낸 지폐가 아니라, 은행이 ‘대출’이다.
  • 이자(利子)는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돈이다.
  •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 연방준비은행(FRB)은 정부 기관이 아닌 민간 법인이다.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열심히 저축해도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없는 현실, 짜장면 한 그릇 값이 수십 년 만에 수십 배로 뛴 이유를 수요와 공급 법칙만으로 납득한 적이 있는가.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제1부: 돈은 빚이다’는 그 불편한 질문에 정면으로 답한다.


세계의 돈줄을 쥔 손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 브레턴우즈에 44개국 대표가 모였다. 이 자리에서 “35달러를 가져오면 금 1온스로 교환해 주겠다”는 약속이 체결됐다. 달러를 금에 묶어두는 금본위제, 이른바 브레턴우즈 체제의 탄생이다. 달러는 그렇게 세계 기축통화 왕좌에 올랐다.

그러나 이 약속은 27년 만에 일방적으로 파기된다. 베트남 전쟁의 막대한 전비(戰費)로 미국 금 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은 금 태환 정지를 전격 선언했다. 이른바 ‘닉슨 쇼크’다. 그 순간부터 달러는 금의 뒷받침을 전혀 받지 못하는 순수한 종이가 됐다. 동시에 미국은 사실상 원하는 만큼 돈을 찍어낼 수 있는 권한을 손에 넣었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 연방준비은행(FRB)은 한국은행처럼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기관이 아니다. 미국 전화번호부를 펼치면 FRB는 정부 기관 리스트가 아닌 민간 기업 리스트에 등록되어 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소수 민간 은행들이 공동 출자해 만든 법인이 전 세계 기축통화의 발행권을 쥐고 있는 것이다. 석유 한 방울 없어 달러로 에너지를 사야 하는 한국 경제가, 그리고 우리의 월급이, 결국 이 민간 금융자본의 결정과 맞닿아 있다.


물가는 왜 오르는가

학교 교과서는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르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 있다. 짜장면 한 그릇이 1970년대 100원에서 지금 7000원이 넘은 이유를, 수요 폭증이나 공급 부족으로만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핵심은 통화량(通貨量), 즉 시중에 유통되는 돈의 총량이다. 상품 가격은 그 상품의 가치뿐 아니라 ‘돈 자체의 가치’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돈이 많아지면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같은 물건을 사는 데 더 많은 돈이 필요해진다. 이것이 인플레이션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통화량은 누가 늘리는가. 많은 사람들이 중앙은행이 지폐를 찍어내는 장면을 떠올린다. 틀렸다. 우리가 쓰는 돈의 대부분은 조폐공사가 제조한 물리적 지폐나 동전이 아니다. 대부분의 돈은 은행 전산망 속 숫자로만 존재한다. 그 숫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바로 은행 대출 행위를 통해서다.


100원이 1000원이 되는 마법

현대 은행 시스템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 부분지급준비제도(Fractional Reserve Banking)다. 은행은 고객 예금 전액을 금고에 보관하지 않아도 된다. 예금액의 일부(지급준비율)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대출로 내보낼 수 있다.

그 역사적 기원은 16세기 영국 금세공업자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사람들은 무거운 금을 금세공업자의 금고에 맡기고 보관증을 받았다. 이 보관증이 금 대신 거래 수단으로 쓰이자, 금세공업자는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챘다. 맡겨진 금을 한꺼번에 찾아가는 사람은 전체의 10% 내외에 불과하다는 것. 그는 남의 금을 몰래 빌려주기 시작했다. 심지어 금고에 없는 금의 보관증까지 발행해 대출해 줬다. 이것이 현대 은행의 원형이다.

돈이 복사되는 과정을 단계별로 살펴보자. 미국 기준 지급준비율 10%를 적용한다.

  • 내가 은행에 100원을 예금한다.
  • 은행은 지급준비금 10원만 남기고 90원을 A에게 대출한다.
  • 이 순간, 내 통장엔 100원이 남아있고 A의 손에는 90원이 생긴다. 시중 통화량은 190원이 됐다.
  • A가 그 90원을 다시 은행에 맡기면, 은행은 81원을 또 다른 사람에게 대출한다.
  •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원금 100원은 이론상 최대 1000원까지 불어난다.

지급준비율이 낮을수록 이 배율은 더 커진다. 한국의 평균 지급준비율은 약 3.5% 수준이다. 이 경우 5000억 원 원금이 시중에서 최대 6조 60억 원까지 팽창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지폐를 찍지 않아도, 은행이 대출을 실행하는 것만으로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학자 로저 랭그릭의 사고 실험이 이 시스템의 본질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섬이 있다. 중앙은행, 시민 B, 시민 C, 단 세 존재만 산다. 중앙은행이 발행한 돈의 총량은 만 원이다. B는 이 만 원을 연이율 5%로 빌렸다. 1년 뒤 B는 원금 만 원에 이자 500원, 합계 만 500원을 갚아야 한다.

B는 그 만 원으로 C에게 배를 사고, 1년 내내 고기를 잡았다. 과연 빚을 갚을 수 있을까.

갚을 수 없다. 이 섬의 총 통화량은 만 원이다. 이자 500원은 처음부터 세상에 없는 돈이다. B가 이자를 갚으려면, 중앙은행이 500원을 새로 찍어 누군가에게 또 대출을 해줘야만 한다. 그 누군가는 다시 이자를 짊어진다.

이 구조는 의자 빼앗기 게임과 닮았다. 항상 의자가 한 개 부족하듯, 이자를 갚을 돈은 시스템 안에 항상 부족하다.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빚을 다 갚았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원금과 이자가 될 돈을 빼앗아 왔다는 뜻이다. 이 시스템에서 모두가 동시에 빚을 갚는 것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파산은 개인의 나태나 무능이 아니라, 시스템 구조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다.

자본주의 사회가 극심한 경쟁 사회가 될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다.


호황 뒤에 오는 청구서

끝없는 대출 팽창이 만들어 낸 거품은 영원하지 않다. 짐바브웨는 외채 상환을 위해 화폐를 무한정 찍어낸 결과 2008년 한 해 최고 2억 3100만%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지폐가 휴지보다 못한 가치가 됐다.

반대 공포도 있다. 대출로 쌓아 올린 경기 호황이 한계에 도달하면, 팽창을 멈추고 급격히 수축한다. 통화량이 줄면 소비가 위축되고, 기업이 쓰러지고, 일자리가 사라진다. 연쇄 부도와 파산이 이어지는 디플레이션의 나락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그 교과서적 사례다. 미국 금융회사들은 상환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에게까지 주택 담보 대출을 남발해 부동산 거품을 키웠다. 거품이 꺼지자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이 동시에 흔들렸다. 그 충격파는 한국 경제에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빚은 돈이고, 돈은 빚이다.”

이 명제는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다. 누군가 대출을 받아야만 새로운 돈이 창조되는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구조적으로 빚을 지도록 설계된 세계에 살고 있다. 끊임없이 날아오는 대출 권유 문자는 개인을 향한 유혹이 아니라, 시스템이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내뿜는 신호다.

금융자본주의 숲 전체를 보는 눈을 갖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든 이 시스템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지금 당장 빚을 내 소비하라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돈이 작동하는 냉혹한 원리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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