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환율 뉴스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달러당 원화 환율이 1460원대를 넘어섰는데, 좀처럼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계획하거나 해외 직구를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체감이 클 것이다. 도대체 왜 원화 가치는 이렇게 계속 떨어지는 걸까.
정부가 대기업 환전 현황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가 직접 나섰다. 외환당국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기아, 한화오션, 포스코홀딩스 같은 주요 수출 대기업들의 환전 현황을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얼마나 원화로 바꿔서 국내에 투자하는지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지난 18일 수출 대기업들과 만나 “환율 안정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가 대미 투자펀드를 만들고 관세 인하 효과를 끌어내기 위해 세금을 썼으니, 기업들도 좀 도와달라는 이야기다. 현재 국내 거주자들이 보유한 달러화 예금은 907억2000만달러에 달한다. 이 중 일부만 원화로 바뀌어도 환율에 꽤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 환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6월에 1360원대까지 내려갔던 원화값은 9월 이후 다시 1400원대로 올라가더니, 최근에는 146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계단을 오르듯 한 단계씩 올라가는 모양새다.
기업들이 달러를 안 판다
원화가 약해지는 첫 번째 이유는 기업들이 달러를 팔지 않기 때문이다. 수출기업들은 해외에서 달러로 대금을 받는다. 보통은 이걸 원화로 바꿔서 국내에서 쓰는데, 요즘은 그냥 달러로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달러값이 더 오를 거라고 기대하면서 환전을 미루는 것이다. 이걸 전문용어로 ‘래깅 효과’라고 부른다.
실제로 숫자를 보면 확연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업들의 해외예금 월평균 잔액은 918억8000만달러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올해 3분기까지 수출액은 전년 대비 2% 늘어나는 데 그쳤는데, 같은 기간 기업의 달러 예금은 844억달러에서 918억달러로 8.8%나 증가했다. 수출이 조금 늘었을 뿐인데 달러 예금은 훨씬 많이 늘어난 셈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글로벌 통상 환경이 불안정해지면서 기업들이 안전자산인 달러를 선호하게 됐다는 분석이 많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 일단 달러를 쥐고 있자는 심리다.
서학개미들의 미국 주식 투자
두 번째 이유는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다. 요즘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다. 이른바 ‘서학개미’라고 불리는 투자자들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 3분기 말 기준 한국의 대외금융자산은 2조7976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국내 거주자의 증권투자는 한 분기 만에 890억달러나 늘었다. 3분기에 나스닥지수가 11.2% 올랐고, 달러당 원화값도 3.3% 떨어지면서 주가 상승과 환차익 효과가 겹쳤기 때문이다.
미국 주식을 사려면 원화를 달러로 바꿔야 한다. 투자자들이 많아질수록 달러 수요는 늘어나고, 그만큼 원화 가치는 내려간다.
2차전지 등 해외 직접투자도 늘었다
세 번째는 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다. 2차전지 관련 업종을 중심으로 해외 직접투자가 87억달러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여기에 매년 약 300억달러에 달하는 직접투자 순유출과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증가분까지 더하면, 한국이 벌어들이는 연간 경상수지 흑자 규모인 약 1000억달러를 넘어선다.
쉽게 말해서 반도체, 자동차, 선박을 아무리 많이 팔아도 그보다 더 많은 돈이 해외로 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으니 원화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환율 패턴 자체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환율이 위기 상황에서 확 올랐다가 상황이 나아지면 금방 내려오는 패턴을 보였다. 급등 후 안정이라는 전형적인 흐름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패턴이 통하지 않는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달러당 원화값이 4년 연속 상승한 것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달러 사이클 자체가 구조적으로 바뀌었다는 진단이다. 그는 원화값이 나중에 떨어지더라도 1300원대 중반 아래로 내려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 환율은 어떻게 될까
정부는 1500원대 진입을 막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다. 구두개입도 하고, 기업 환전 현황도 점검하고 있다. 하지만 원화 약세의 원인이 구조적인 문제들이라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기업들의 달러 보유 선호,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 증가, 해외 직접투자 확대까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환율에 민감한 상황이라면 이런 구조적 변화를 인식하고 대비하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