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분할된 삼성에피스홀딩스가 코스피 시장에 새롭게 상장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에피스넥스랩을 자회사로 둔 지주회사 형태로 출범한 건데, 단순히 회사를 쪼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업 구조 자체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동안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 사업에 집중해왔다. 바이오시밀러는 쉽게 말해 특허가 만료된 바이오 의약품을 복제한 제품이다. 오리지널 의약품보다 가격이 저렴해서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많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 분야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져왔고, 올해 1~3분기에만 영업이익 3,468억 원을 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조금 줄긴 했지만, 이건 2023년에 받았던 기술료 수익 때문이고 실제 제품 판매 이익은 114.5%나 늘었다고 한다.
회사 측은 앞으로 바이오시밀러 사업에서 나오는 수익을 신약 개발에 쏟아붓겠다는 계획이다. 바이오시밀러로 꾸준히 돈을 벌면서, 그 돈으로 리스크는 크지만 성공하면 대박인 신약 개발을 밀어붙이겠다는 거다. 김경아 대표가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삼성에피스홀딩스를 동시에 이끌고, 홍성원 부사장이 에피스넥스랩을 맡으면서 삼위일체로 움직인다.
바이오시밀러 쪽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1위, 2위를 목표로 공격적으로 확장 중이다. 올해 미국에서는 바이오시밀러 기업 중 최초로 두 개의 주요 보험 관련 업체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다. 스텔라라라는 유명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의 바이오시밀러 ‘피즈치바’를 공급하는 건데, 이게 꽤 의미 있는 성과라고 한다. 유럽에서는 기존 파트너였던 바이오젠으로부터 ‘바이우비즈’와 ‘오퓨비즈’라는 제품을 직접 가져와서 판매망을 넓히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도 화려하다.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는 임상 1상과 3상을 진행 중이고, 트렘피야, 탈츠, 엔허투 같은 제품들도 임상 준비 중이다. 키트루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항암제 중 하나라서 그 바이오시밀러가 나오면 시장 반응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는 2030년까지 10개 이상의 새로운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고, 장기적으로는 20종 이상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신약 개발 쪽으로 넘어가 보면, 삼성바이오에피스가 특히 힘을 주는 건 ADC라는 기술이다. ADC는 항체약물접합체의 줄임말인데, 항체와 항암제를 결합해서 암세포만 골라서 공격하는 차세대 항암제다. 기존 항암제보다 부작용이 적고 효과는 좋아서 요즘 제약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분야 중 하나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조만간 방광암 치료용 ADC 신약후보물질의 임상시험 승인을 미국 FDA에 신청할 예정이다. 2026년에 글로벌 임상 1상에 들어가는 게 목표다. 2023년에는 국내 바이오 기업 인투셀과 손잡고 최대 5종의 ADC 후보물질을 공동 연구하기로 했고, 올해는 중국 프론트라인바이오파마와도 ADC 2종 공동개발 계약을 맺었다. 혼자 다 하려고 하기보다는 여러 파트너와 협력하면서 개발 속도를 높이고 리스크도 분산하는 전략이다.
ADC 말고도 항체 치료제 분야에서도 움직임이 있다. 서울대학교, 프로티나와 함께 정부 국책과제에 선정돼서 2027년까지 10개의 항체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한다.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대학과 바이오 기업이 함께 신약을 만드는 건데, 성공하면 국내 바이오 산업 전체에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
에피스넥스랩은 10명 정도의 작은 조직이지만 역할은 명확하다. 단일 신약 하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여러 신약에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을 개발하는 거다. ADC 플랫폼이나 펩타이드 플랫폼 같은 걸 만들어두면 나중에 다양한 신약 개발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다. 여기서 개발한 기술은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신제품 만들 때 쓰기도 하고, 글로벌 제약사에 팔거나 공동개발로도 연결된다고 한다. 바이오시밀러 개발할 때 썼던 디지털 트윈 같은 첨단 기술도 신약 개발에 접목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이번 분할로 기존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주들은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할 텐데, 10월 30일부터 매매 정지됐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이 24일부터 다시 거래된다. 기존 주주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 0.65주와 삼성에피스홀딩스 주식 0.35주를 받는 식으로 배정받는다. 분할 기준일 종가가 122만 1,000원이었으니까 이걸 기준으로 계산하면 된다. 1주가 안 되는 단주는 현금으로 받는다.
투자 관점에서 보면 삼성에피스홀딩스는 꽤 흥미로운 구조다. 바이오시밀러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면서 동시에 신약 개발이라는 고위험 고수익 사업도 병행한다. 바이오시밀러 제품 판매가 100% 이상 성장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에서 점유율도 계속 높이고 있으니 현금 창출 능력은 검증됐다고 볼 수 있다. 그 돈으로 ADC나 항체 치료제 같은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가는 거다.
물론 신약 개발은 성공 확률이 낮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임상 실패 리스크도 항상 있다. 하지만 2026년 ADC 임상 진입, 2027년 항체 신약 후보물질 10개 완성, 2030년까지 바이오시밀러 10개 추가 개발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는 건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국내 바이오 업계에서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무게감도 무시할 수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CMO 사업 노하우와 인프라도 활용할 수 있고, 자금력도 탄탄하다. 인투셀이나 프론트라인바이오파마 같은 파트너사들과의 협력도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건 키트루다 바이오시밀러와 방광암 ADC 신약이다. 키트루다는 시장 규모가 워낙 크니까 바이오시밀러만 잘 나와도 매출에 큰 도움이 될 거고, ADC는 기술 자체가 미래지향적이라서 성공하면 회사 가치가 몇 배는 뛸 수 있다.
삼성에피스홀딩스의 독립은 단순한 기업 분할이 아니라 한국 바이오 산업이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바이오시밀러 강국에서 신약 개발 강국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 몇 년간 이 회사가 어떤 성과를 내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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