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1894~1976)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한 살 때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이 어려워졌고, 벤저민 그레이엄이 직접 가족의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은 오히려 그에게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저민 그레이엄은 어린 시절 성적이 아주 우수해서 월반을 자주 할 정도였으며, 1914년 콜롬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월스트리트의 뉴버거, 핸더슨 & 로엡이라는 회사에 입사하여 증권 투자 업계에 입문했다.
부자가 된 비결

1. 뛰어난 분석력과 초기 성공
벤저민 그레이엄은 1919년 25세의 나이로 60만 달러라는 거액의 연봉을 받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이었던 이 연봉은 그의 뛰어난 분석 능력과 투자 실력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2. 안전마진(Margin of Safety) 개념의 창시
1929년 ‘검은 목요일’이라고 불리는 미국 월스트리트 주식시장의 거품이 한꺼번에 꺼지는 사건으로 벤저민 그레이엄도 약 3년 동안 자산의 70%를 잃는 큰 손실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위기가 오히려 그를 투자 천재로 만들었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대공황을 기회로 삼아, 수년간에 걸쳐 주식시장을 다시 분석하여 ‘가치투자 원칙’을 만들었다. 그는 안전마진이라는 개념을 채권투자에서 가져왔는데, 예를 들어 어떤 철도회사의 가치가 30만달러고 부채가 10만달러라면, 이론상 회사의 가치가 20만달러 이상 감소해야 채권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3. 그레이엄-뉴먼 투자회사의 놀라운 성과
그가 1925년 설립한 그레이엄-뉴먼 투자회사는 30여 년간 17% 이상의 연평균 수익을 달성했다. 이는 당시 시장 평균을 크게 웃도는 성과였으며, 그의 투자 철학이 실제로 효과가 있음을 증명했다.
가치투자의 탄생

1. 정량적 분석의 도입
그는 당시 주먹구구식이었던 주식투자에 숫자 분석 방식을 도입하여 기업의 가치를 평가했다. 주식의 가격이 회사가 가지고 있는 가치에 비해 싼 경우 투자하는 가치평가의 방법을 설명하였다.
2. 투자와 투기의 명확한 구분
벤저민 그레이엄은 월스트리트 붕괴를 겪으며 쓴 ‘증권 분석’에서 투자와 투기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투자는 철저한 분석을 통해서 원금의 안전과 충분한 수익을 약속받는 행위이다.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투기이다.”라고 했다.
3. 청산가치 중심의 투자
벤저민 그레이엄은 “청산가치”를 중요시 했는데, 이는 낮은 부채비율, PBR과 높은 ROA로 표현될 수 있다. 그의 투자전략은 ‘꽁초전략’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제자인 워런 버핏이 ‘남이 버린 꽁초를 주워서 공짜로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남들이 쳐다보지 않는 저평가된 주식에 투자한다는 뜻에서 붙여준 별명이다.
워런 버핏과의 운명적 만남

1. 책으로 시작된 인연
워런 버핏은 20세에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를 읽고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워런 버핏은 1950년에 초 19세 당시에 “현명한 투자자” 초판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투자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책 중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2. 컬럼비아 대학에서의 만남
하버드 경영대학원 입학을 거절당한 워런 버핏은 컬럼비아경영대학원에 들어간다, 여기서 영원한 스승이자 전설적인 투자자 벤저민 그레이엄의 수업을 듣는다. 워런 버핏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과목에서 유일하게 A+를 받은 학생이었다.
3. 그레이엄-뉴먼에서의 실무 경험
1954년 벤저민 그레이엄은 워런 버핏에게 전화를 걸어 일자리를 약속했다. 워런 버핏은 봉급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고 다음 항공기편에 몸을 실었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워런 버핏이 제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며 자신과 워런 버핏은 서로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4. 투자 철학의 계승과 발전
한 인터뷰에서 워런 버핏은 투자를 시작한 이래로 투자 방식이 어떻게 변해 왔느냐는 질문에 “제 투자 방식은 1949년이나 1950년 벤저민 그레이엄의 책에서 배운 것입니다.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지금 워런 버핏의 투자 철학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 철학보다 찰리 멍거의 투자 철학에 훨씬 가깝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현재 밸류에이션 수준을 강조한 반면, 찰리 멍거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장기 성장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
‘가치투자의 아버지’

1. 불멸의 저서들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자산의 가격을 분석하고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자신의 이론을 구축하여 전설의 책 ‘현명한 투자자’와 ‘증권분석론’을 쓰게 됩니다. 『현명한 투자자』는 아직도 아마존에서 투자분야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 투자 철학의 3대 원칙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 원칙은 크게 세 가지다:
- 주식의 본질을 보라. 즉, 주식을 기업의 일부로 봐야지, 차트의 움직임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 주식 시장을 동료로 대하라. 즉, 그가 말한 미스터 마켓을 매 거래일마다 주식을 팔라거나, 사라 권하는 동료로 생각하라는 말이다.
- 안전마진을 확보하라.
3. 현대적 가치투자의 기틀
벤저민 그레이엄이 제시한 가치투자 원칙은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벤저민 그레이엄을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부르고 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투자 철학자

벤저민 그레이엄은 가난한 어린 시절과 1929년 대공황이라는 두 번의 큰 위기를 겪었지만, 이를 오히려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특히 대공황으로 인한 막대한 손실은 그로 하여금 안전마진이라는 혁신적인 투자 개념을 만들어내게 했고, 이는 현대 가치투자의 기틀이 되었다.
그가 1925년 설립한 벤저민 그레이엄-뉴먼 투자회사는 30여 년간 17% 이상의 연평균 수익을 달성하며 그의 투자 철학이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전에서 통하는 방법론임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그의 진정한 유산은 워런 버핏이라는 위대한 제자를 키워낸 것이다. 워런 버핏은 그로부터 “시장은 나의 머슴이지 주인이 아니다”는 가르침을 배웠다. 비록 워런 버핏이 나중에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 방식을 발전시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지만, 그 근본에는 여전히 벤저민 그레이엄의 가치투자 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단순히 돈을 번 투자가가 아니라, 투자를 투기와 구별하고 체계적인 분석 방법을 제시한 투자 철학자였다. 그의 유산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길잡이가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필립 피셔: 성장투자의 아버지가 부자가 된 비결과 투자 기법 – Enrich Times
현명한 투자자: 직접 쓴 마지막 개정판 | 벤저민 그레이엄 – 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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