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 경신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2025년 10월 셋째 주,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희토류 수출 제한에 맞서 대규모 관세 부과를 위협했고, 미국 지역은행들의 부실 우려가 불거지면서 시장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17일 기준으로 S&P 500을 비롯한 3대 지수는 모두 반등에 성공했다. 다시 사상 최고치 근처로 복귀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6개월간 무려 30%나 급등했던 시장에 드디어 숨 고르기가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제롬 파월이 갑자기 긴축 종료 카드를 꺼낸 이유
이번 주 여러 뉴스들이 쏟아졌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소식은 따로 있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14일 “향후 몇 달 안에” 양적 긴축을 중단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2022년부터 3년째 이어온 자산 축소 정책을 곧 끝낼 수 있다는 신호다.
파월이 왜 지금 이런 얘기를 꺼냈을까. 최근 단기 자금 시장에서 스트레스 신호들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SOFR이나 일반 레포금리 같은 초단기 자금 시장 금리가 연준 기준금리보다 높아지고 있다. 쉽게 말하면 시장에 급전이 부족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재미있는 건 요즘 시장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투자자들이 달러 가치 하락을 걱정해서 금이나 주식, AI 관련 자산으로 돈을 옮기고 있다. 그런데 이런 거래를 하려면 결국 달러가 필요하다. 달러에서 탈출하려는 움직임이 오히려 달러 수요를 급증시키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같은 대형은행들이 이번주 실적을 발표했는데 3분기 예금 잔액이 예상보다 낮았다. 사람들이 예금보다는 주식이나 ETF에 투자하는 걸 선호하면서 은행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제이미 다이먼의 ‘바퀴벌레 이론’이 시장을 흔들다
그런데 시장을 정말 긴장시킨 건 JP모건 CEO 제이미 다이먼의 발언이었다. 그는 14일 실적 발표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퀴벌레 한 마리를 봤다면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말이 왜 문제가 되냐면, 2008년 금융위기 때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HSBC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문제를 경고했을 때 ‘바퀴벌레의 첫 모습’이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대부분 무시했고, 결국 시스템 전체가 무너졌다.
다이먼이 말한 ‘바퀴벌레’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지난달 서브프라임 자동차 대출 업체 트라이컬러와 자동차 부품사 퍼스트브랜즈가 잇달아 파산 신청을 했다. 특히 트라이컬러는 저신용자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소득 정보를 허위로 기재하거나 한 대의 자동차에 이중, 삼중으로 담보를 잡는 등 사기성 행태가 드러났다.
더 문제는 이런 부실 대출을 기반으로 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해서 시장에 대규모로 유통시켰다는 점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똑같은 구조다. JP모건을 비롯한 여러 금융사들도 이미 수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반영한 상태다.
다이먼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우리는 2010년 이후 지금까지 신용 강세장을 누려왔는데, 그로 인해 일부 과잉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만약 경기침체가 온다면 신용 부실이 훨씬 더 많이 드러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모대출 시장의 숨겨진 위험
다이먼이 특히 우려를 표한 부분이 사모대출 시장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들은 위험한 대출을 줄였다. 그 빈자리를 사모대출 시장이 채웠는데, 문제는 이 시장이 규제 밖에 있다는 점이다.
사모신용 상장 펀드 같은 곳들은 투자 정보가 투명하지 않고 가격 평가도 외부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모든 게 잘 돌아갈 땐 문제가 없지만, 부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갑자기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사모신용 펀드들의 주가가 최근 한 달 이상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16일, 정말로 미국 내 자산 규모 30, 31위의 소형 지역은행인 자이언과 웨스턴얼라이언스가 대출 부실로 인한 손실을 발표했다. 다이먼의 ‘바퀴벌레 이론’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2008년 같은 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월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2008년 금융위기나 2023년 SVB 사태 같은 시스템적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일단 연준이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다. 파월이 이 시점에 양적 긴축 종료를 시사한 것 자체가 시장의 불안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2023년 SVB 사태 때도 연준은 은행들이 보유 채권을 시가 손실 없이 담보로 맡기고 1년짜리 자금을 빌릴 수 있는 파격 조건의 프로그램을 가동해서 위기를 수습했다.
또한 하이일드채권과 투자등급채권 스프레드가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시장이 신용 시스템 전반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2023년과 달리 금리 인하 환경이라는 점이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장 친화적 정책, 기업들의 호실적, AI 투자 붐 같은 강세장을 뒷받침할 요인들도 여전히 유효하다. 월가 대부분은 이번 조정이 단기 과열을 식히는 건전한 조정이며, 10월 말 미중 정상회담까지의 고비를 넘기면 연말 랠리가 다시 펼쳐질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시장 분위기가 달라진 이유
그렇다면 왜 ‘방탄’이었던 시장 심리가 달라진 걸까. JP모건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지난 10여 년 동안 사실상 경기 침체 없이 위험자산 투자가 호황을 누려왔다. 그러다 보니 투자자들이 개별 이벤트마다 “이게 위기의 시작일 수 있다”는 과민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허용하려는 한도가 낮아지고 있다. 그 결과 비정상적으로 올라갔던 위험 자산 전반의 가격이 정상화되면서 밸류에이션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6개월간 S&P 500이 30% 올랐고, 일일 변동폭이 1% 미만인 거래일이 33일이나 이어지는 역사적인 저변동성 장세가 펼쳐졌다. AI 관련주에 대한 낙관이 지나친 건 아닌지, 미국 경제가 정말 증시가 오르는 만큼 튼튼한지, ‘걱정의 벽’을 타고 계속 오르는 증시를 바라보며 투자자들 마음 속 불안의 싹이 자라고 있던 참이었다.
투자자들이 알아야 할 것
미국 경제와 증시에 대한 낙관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당분간 변동성이 이어지고 자금 흐름이 다소 보수적으로 바뀌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한다.
연준이 이미 시장 구원 의지를 보였고, 증시 성과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6년 중간선거를 준비할 이 시점에 과도한 공포에 빠질 이유는 없다. 다만 10여 년간 위험 자산의 높은 가격을 허용해온 시장의 심리가 바뀔 가능성에는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제이미 다이먼의 ‘바퀴벌레 이론’이 정말 현실이 될지, 아니면 과도한 우려에 그칠지는 앞으로 몇 주가 결정할 것이다. 지금은 공포에 빠지기보다는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도 장기 투자 관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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