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심 요약
- 일론 머스크, 자체 반도체 제조시설 ‘테라팹’ 건설 의지 재확인…3~4년 내 공급 부족 우려
- 업계는 회의적 시각 우세하지만, 머스크의 ‘불가능 돌파’ 전례로 긴장감 고조
- 단기적으론 삼성 파운드리 수혜 전망, 장기적으론 소부장 업계 新시장 기대
“반도체 없으면 테슬라도 없다”…머스크의 절박한 경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가 또다시 반도체 업계를 긴장시키는 발언을 쏟아냈다. 지난 2025년 4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그는 “삼성전자와 TSMC, 마이크론 등 주요 파트너사의 생산량을 최상으로 가정해도 충분하지 않다”며 자체 반도체 제조 시설 구축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머스크 CEO가 제시한 해법은 ‘테라팹(TeraFab)’이다. 파운드리와 메모리 반도체 양산, 첨단 패키징 설비까지 수직계열화한 종합 반도체 제조 단지로, 전기차 생산의 모든 공정을 한 곳에 모은 ‘기가팩토리’의 반도체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그는 “3~4년 안에 발생할 제약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테슬라는 테라팹을 건설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머스크가 반도체를 단순한 부품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AI 칩이 없으면 옵티머스(휴머노이드 로봇)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깡통 인간처럼 쓸모없어진다”는 그의 발언은 자율주행 로보택시와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테슬라의 미래 먹거리가 모두 반도체 확보에 달려있음을 시사한다.
지정학적 위험에 대한 우려도 명확히 드러났다. “수많은 기업이 지정학적 리스크에 방심하고 있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배터리와 로봇, AI 칩을 계속 생산할 수 있도록 대비하겠다”고 선언했다. 대만 집중도가 높은 현 반도체 공급망의 취약성을 정면으로 지적한 셈이다.
“예술의 경지” vs “머스크의 마법”…엇갈린 전망
머스크의 선언에 업계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회의론의 선봉에 선 인물은 다름 아닌 젠슨 황 엔비디아 CEO다. 그는 최근 대만 방문 중 “(테슬라의 자체 칩 생산은) 극도로 어려울 것”이라며 파운드리 운영을 ‘예술’에 비유했다.
황 CEO는 “첨단 칩 제조 팹은 단순히 공장을 짓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TSMC가 현재 수행하고 있는 공학, 과학, 그리고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역량은 정말로 달성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반도체를 오래 다룬 인텔 파운드리 사업부조차 고전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신규 진입의 어려움을 역설했다.
IT 매체 톰스하드웨어 역시 “사업의 엄청난 복잡성을 고려할 때 테라팹의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머스크의 발언을 보면 최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 작동 방식에 대한 전문가 수준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특히 2나노 공정부터 바로 뛰어든다는 시나리오는 더욱 비현실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재 삼성전자와 TSMC, 인텔만이 진입한 2나노는 미세공정 난도가 급격히 올라간 구간으로, 수십 년 축적된 노하우 없이는 접근조차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머스크는 전기차 대중화, 민간 우주 발사체 재사용, 글로벌 위성 인터넷망 구축 등 기존 산업의 ‘불가능’을 여러 차례 깨뜨린 전례가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의 자체 파운드리 구축은 결코 쉽지 않겠지만, 머스크 CEO가 과거에도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을 성공시킨 전례가 많아 지금부터라도 ‘머스크 파운드리’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 수혜는 삼성, 장기 기회는 소부장
당장은 오히려 삼성전자 같은 기존 파운드리의 입지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IT 매체 WCCF테크는 “테슬라가 반도체 제조 경험이 전무한 점을 고려하면 머스크 CEO가 실제로 2나노 칩 생산을 목표로 할 경우 현재 파운드리 파트너들과 협력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테슬라는 그동안 AI 칩을 자체 설계해왔지만 생산은 삼성전자·TSMC 등에 맡겨왔다. 최근에는 차세대 AI5·AI6 칩을 삼성전자와 TSMC에서 병행 생산하는 전략을 확인한 바 있다. 머스크가 선단 공정 물량 선점을 강조할수록 삼성 파운드리의 협상 테이블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파운드리 1개 라인 구축에는 수십조원 규모의 장비·소재 투자가 필요하다. 테라팹이 2나노급 첨단 공정을 지향한다면 필요 장비는 삼성전자·TSMC와 동일한 초정밀 라인업이 될 것이고, 이는 식각·증착·세정·열처리·측정 장비, 그리고 고순도 가스·포토레지스트 등 소부장 업계에 ‘제3의 초대형 고객’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테슬라가 미국에 거대 공장을 지을 때 기술력이 검증된 한국산 장비와 소재를 대거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테일러 팹과 테슬라의 협업 관계를 고려하면 국내 기업들의 북미 시장 진출 통로는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머스크 반도체’는 기존 칩과 완전히 다르다
테라팹이 진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반도체 제조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가능성 때문이다. 테슬라가 필요로 하는 반도체는 스마트폰이나 서버용 고성능 칩과 물리적 요구 조건이 전혀 다르다.
자동차·로봇·우주 시스템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고온·고전압·진동·방사선 환경에서 10년 이상 무중단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는 산업 인프라용 칩에 가까운 특성으로, 공정·소재·패키징 전반의 재설계를 요구한다.
기존 2나노 경쟁이 ‘더 작고 빠른 트랜지스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테슬라가 요구하는 2나노는 ‘더 견고하고 오래 가는 트랜지스터’에 가깝다. 이를 위해서는 게이트올어라운드(GAAFET) 구조에서도 채널 두께와 절연막, 금속 배선 간격을 다르게 설계해야 한다. 동일한 2나노라 해도 EUV 마스크, 증착·식각 레시피, 금속·절연막 소재가 모두 달라진다는 뜻이다.
이는 고집적·저전력 중심의 모바일·PC·데이터센터용 공정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테슬라용 반도체는 전력 스트레스와 열, 장기 신뢰성을 견디는 방향으로 공정 스택이 재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테라팹이 현실화된다면 단순히 ‘테슬라가 공장 하나 짓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자동차·로봇·우주 중심의 새로운 반도체 생태계가 형성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결론: 불확실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미래
머스크의 테라팹 구상은 현재로선 야심찬 계획에 가깝다. 파운드리 진입 장벽은 상상 이상으로 높고, 2나노부터 시작한다는 시나리오는 업계 전문가들조차 고개를 젓게 만든다. 하지만 머스크라는 이름 석 자가 가진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가 ‘불가능’이라 여겨진 영역들을 하나씩 정복해온 궤적을 생각하면, 테라팹 역시 단순한 허언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당장은 반도체 수급 우려를 표면화하며 기존 파트너사들과의 협상력을 높이는 전략으로 읽힌다. 삼성전자와 TSMC 입장에서는 테슬라라는 거대 고객의 장기 물량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소부장 업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자동차·로봇·우주라는 새로운 반도체 수요 영역이 본격화되면, 기존과 다른 공정·소재·장비 생태계가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건 하나다. 머스크의 이번 선언으로 반도체 업계는 이미 긴장 모드에 돌입했고, 누가 먼저 ‘머스크 반도체 시대’를 대비하느냐가 향후 10년 판도를 가를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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