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설립된 이후 처음으로 외화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복지부가 관련 연구 용역까지 발주한 상황이라 이제 본격적인 논의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빚 없는 깨끗한 연기금으로 유지되어 온 국민연금이 왜 갑자기 외화채 발행을 고민하게 된 걸까.
국민연금의 달러 매입이 문제였나
사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규모는 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24년 9월 말 기준으로 전체 운용자산 1,361조원 중에서 해외 주식과 채권만 합쳐도 600조원이 넘는다. 전체 자산의 절반 가까이가 해외에 투자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큰 규모로 해외투자를 하려면 당연히 달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이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과정에서 외환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환율이 불안정한 시기에는 국민연금의 대규모 달러 매입이 시장의 균형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국민연금 외화채 발행이다. 국내 시장에서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대신, 아예 해외에서 달러나 유로를 직접 빌려오자는 것이다. 한국전력이나 수출입은행 같은 공기업들이 오래전부터 해온 방식과 비슷하다.
외화채 발행의 장점은 분명해 보이지만
외화채 발행의 가장 큰 장점은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이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는 규모가 줄어들면, 그만큼 시장에 미치는 충격도 줄어든다. 정부 입장에서는 환율 관리에 상당히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외화채는 결국 빚이다. 빌린 돈은 이자와 함께 갚아야 한다. 현재 미국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외화채를 발행하면 조달 비용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달러 강세 국면이라면 부담은 더 커진다.
국민연금의 올해 8월 기준 운용수익률은 8.22%로 상당히 좋은 편이다. 최근 3년 평균인 6.98%보다도 높다. 그런데 외화채를 발행해서 이자를 내야 한다면 이런 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세계 금융시장 상황이 나빠지거나 금리가 오르면 상환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
무부채 원칙이 깨진다는 것의 의미
국민연금은 세계 주요 연기금 중에서도 드물게 무부채 구조를 유지해왔다. 이는 단순히 빚이 없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한다는 신뢰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외화채 발행으로 이런 원칙이 깨지면 어떻게 될까. 물론 해외 자금 조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빚을 지우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국민의 노후자금을 동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의 독립적인 기금 운용 원칙과 정부의 외환정책 목표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법 개정부터 해야 하는 상황
현행 국민연금법은 기금 재원을 연금보험료, 운용 수익금, 적립금, 잉여금 이렇게 네 가지로만 규정하고 있다.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은 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외화채를 발행하려면 국민연금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복지부는 연구용역을 마치면 환율 대응을 위한 4자 협의체에 내용을 공유하고, 정부 입법 형태로 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회에서 여야 협의를 거쳐야 하는 만큼 법 통과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외화채 발행의 실효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확장재정 정책과 대미 투자 증가 등으로 원화 약세 압력이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외화채 발행만으로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도 신중한 입장이다. “환율 안정화 관점에서 국민연금의 역할이 있을 수 있지만, 국민의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기관인 만큼 의사 결정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서 고민의 깊이가 느껴진다.
결국 균형의 문제
국민연금 외화채 발행은 환율 안정이라는 거시경제 목표와 국민 노후 보장이라는 연금 본래 목적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문제다. 환율 안정 효과가 실제로 얼마나 클지, 수익률 저하와 리스크 증가를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국민연금의 독립성은 어떻게 보장할지 등 고민해야 할 지점이 많다.
앞으로 진행될 연구용역 결과와 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답이 나와야 할 것이다.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인 만큼 투명하고 신중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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