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뉴스'구리 가격 45년 만에 최고' 전선업계는 왜 좋아할까?

‘구리 가격 45년 만에 최고’ 전선업계는 왜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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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구리 가격이 정말 많이 올랐다. 12월 8일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구리 가격이 톤당 1만 1,695달러를 찍으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한다. 1년 사이에 30%나 오른 셈이다.

재미있는 건 미국에서 이 구리를 노린 도둑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화선이나 인터넷선에 들어있는 구리선을 잘라내서 되파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맨홀을 뜯거나 아스팔트를 깎아내서 지하 전력선을 훔쳐가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구리 가격이 워낙 높아지니까 이런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보통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그걸 쓰는 제조업체들은 원가 부담 때문에 힘들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선업계만큼은 예외다. 오히려 구리 가격이 오를수록 돈을 더 잘 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에스컬레이터 조항이라는 비밀 무기

전선업체들이 납품 계약을 할 때 ‘에스컬레이터 조항’이라는 걸 넣는다. 이게 핵심인데, 원자재 가격이 변동되면 그만큼을 제품 판매 가격에 바로 반영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구리 가격이 10% 오르면 전선 가격도 자동으로 10% 올라가는 구조다.

전선을 만들 때 구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제품에 따라 다르긴 한데, 보통 60%에서 많게는 90%까지 된다. 그러니까 구리 가격이 오르면 전선 판매 가격도 덩달아 올라가고, 결과적으로 매출이 커지는 것이다. 거기다 인건비나 감가상각비 같은 고정비는 그대로인데 매출만 커지니까 영업이익률도 좋아진다. 전선업계 관계자 말로는 이걸 규모의 경제 효과라고 부른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회사가 쌓아둔 구리 재고의 가치도 올라가니까 이것도 이익으로 잡힌다. 구리 가격 상승이 여러 방면으로 전선업체한테는 좋은 일인 셈이다.

구리 가격은 왜 이렇게 오르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수요는 폭발하는데 공급이 못 따라가기 때문이다. 전 세계 광산들이 오래되면서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는데, 새로운 광산을 개발해서 구리를 캐내려면 보통 10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당장 공급을 늘릴 방법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반면에 수요는 계속 늘어난다. 요즘 핫한 AI 데이터센터가 전기를 엄청나게 먹는데, 여기에 구리가 필수다. 거기다 풍력발전소, 태양광 발전소, 전기차 충전 인프라 같은 것들도 모두 구리를 쓴다. 씨티그룹이나 JP모건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2025년 상반기에 구리 가격이 톤당 1만 2,000달러에서 1만 2,500달러까지 갈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때문에 전력망이 모자라다

단순히 구리 가격만 오르는 게 아니라, 케이블 자체의 수요도 폭발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가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전력을 훨씬 많이 쓰기 때문에 대규모 송전망을 새로 깔아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초고압 직류송전 케이블, 영어로 HVDC 케이블이라고 하는데 이게 지금 없어서 못 판다는 얘기가 나온다. 대용량 전기를 손실 없이 멀리 보낼 수 있어서 AI 데이터센터 같은 데 필수적인데, 문제는 이걸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전 세계에 6개 정도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LS전선이 유일하고, 유럽에 넥상스, 프리즈미안, NKT 같은 회사들이 있다.

공급자가 적으니까 전선업체들이 갑의 입장이 된 셈이다. 수익성 좋은 프로젝트만 골라서 받을 수 있다고 한다.

LS전선과 대한전선 실적 전망

증권가에서는 올해 LS전선 매출이 7조 5,000억원, 대한전선 매출이 3조 5,000억원을 넘어서 각각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할 거라고 보고 있다.

수주 잔고도 계속 쌓이고 있다. LS전선의 3분기 수주 잔고가 6조 2,0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조원 넘게 늘었고, 대한전선도 3조 4,175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앞으로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의미다.

공장 투자도 적극적으로 진행 중

전선업체들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공장 투자에 적극적이다. 전선이라는 게 부피도 크고 무거워서 운송비가 많이 드는 품목이라 현지에서 생산하는 게 유리하다.

LS전선은 최근 동해에 5공장을 완공해서 HVDC 케이블 생산 능력을 4배로 늘렸다. 거기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1조원짜리 해저케이블 공장을 짓고 있다. LS전선 관계자 말로는 한국에서 유럽으로 케이블을 보낼 경우 운송비랑 보험료가 제품 가격의 20% 이상이라고 한다. 미국 공장이 완공되면 북미는 물론 유럽 시장 공략할 때도 물류비를 크게 줄일 수 있어서 이익률이 높아질 거라고 한다.

대한전선도 충남 당진에 해저케이블 1공장을 준공한 데 이어 2027년 가동 목표로 2공장도 짓고 있다. 여기서는 HVDC 해저케이블이랑 초고압 교류 송전 케이블을 만들 예정이다. 베트남 공장에는 초고압 케이블 설비를 확충하고, 남아공 생산 거점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구리 가격 상승과 AI 데이터센터 붐이라는 두 가지 호재가 겹치면서 전선업계가 장기 호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에스컬레이터 조항 덕분에 원자재 가격 상승이 오히려 매출 증가로 이어지고, 케이블 자체 수요도 폭발하고 있으니 당분간은 이런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투자를 고려한다면 글로벌 경기 변동이나 구리 가격 급락 가능성 같은 리스크 요인도 함께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전선업계에 순풍이 불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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